영화는 200 수준의 IQ, 불행했던 영재이자 천재가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김웅용 교수의 삶과 유사하다.
김웅용 교수는 명석한 두뇌로 6세 때 미적분을 푸는 등 천재로 주목받았다. 1980년 IQ 210을 기록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치렀던 그는 8세 때인 197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1974년부터 5년 동안 나사(NASA)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웅용 교수는 1978년 돌연 귀국해 1981년 충북대학교에 입학하며 '실패한 천재'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이후 김웅용 교수의 사례는 잘못된 영재 교육의 폐단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웅용 교수는 1993년부터 충북개발공사에서 근무하면서 연세대, 성균관대 등 11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4년에는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과 대우 교수로 대학원생 수업을 맡으면서 교수직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다. 또 2014년 신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되며, 자신을 가리킨 '실패했다'는 평가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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