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의 시작 초복.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방울이 흐르는 날씨에 거리를 걷다 뜻밖의 냉풍을 맞고 발걸음을 멈췄다. 시원한 바람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들어간 곳은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필요한 물건이 있을 리 없지만 진열대를 서성이며 땀을 식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거리로 나서지만 괜찮다. 주위에 수많은 가게들이 ’개문냉방‘으로 냉기를 내뿜고 있어서다.
지난 17일 찾은 명동관광특구 거리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열고 영업 중이었다. 머니S가 한시간 동안 명동일대를 확인한 결과 화장품·의류·엑세서리 매장 92개 중 80개에서 개문냉방을 하고 있었다.
◆법 지키면 손해? 문 닫은 가게 손꼽을 정도
화장품가게들은 대형 선풍기까지 동원해 손님을 끌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을 등지고 제품 홍보를 하고 있던 직원 A씨에게 문을 열고 영업하는 이유를 묻자 “차이가 크다. 여름에 문 열고 닫고는. 이렇게라도 해야 매장으로 손님을 끌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개문냉방 단속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 대형 선풍기 앞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B씨는 같은 질문에 “주위 가게들도 다 열고 해서 어쩔 수 없다. 단속? 단속은 잘 모르겠는데”라고 답했다.
오히려 동일업종이 모인 곳에선 소리 없는 냉방경쟁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다른 골목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쓸쓸히 문을 닫고 영업하는 가게가 보였다. 주위에 20개가 넘는 화장품가게 중 유일하게 문을 닫고 영업 중인 가게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해당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C씨는 “얼마 전 전기절약 캠페인을 하는 사람이 왔다갔다. 그 이후부터 일정시간엔 문을 닫고 영업하는데 나중에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열고 한다. 다 그렇게 하니까”라고 말했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철 개문냉방은 매장으로선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는 최고수단이다. 그러나 전력낭비라는 비판도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매장들의 개문냉방을 단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부터 개문냉방 영업 단속 공고를 내리지 않아서다. 재작년까지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개문냉방 매장이 단속대상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에너지 수급여건이 좋아져 이 공고를 내리지 않았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여름철이면 무조건 개문냉방을 단속하는 것이 아니고 공고를 내려야 단속대상이 된다. 그전 까지는 저희도 캠페인·홍보 형식으로 에너지 절약을 독려한다”며 “보통 예비율과 전기 공급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아직까지는 충분하다. 다만 8월에 수요가 과다하게 급증하면 언제든지 단속공고를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전력낭비" vs "그래도 시원해서 좋아"
“사막의 오아시스 같아요.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지네요.”
이날 명동에 쇼핑하러 왔다는 대학생 강다예(21·여)씨는 문을 열어둔 가게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낮 기온 34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매장 앞에 서있던 그는 별로 더워 보이지 않았다. 강씨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더위를 피해 잠시나마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전력낭비를 걱정하는 시민도 있었다. 딸과 함께 쇼핑하러 왔다는 40대 김희영(가명·여)씨는 “집에서는 전기세 때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에어컨을 켜는데 여기는 에어컨을 켜고 문까지 열어둬 전력 낭비가 아닌가 싶다. 우리처럼 쇼핑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시원해서 좋긴 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문을 열어둔 매장과 그렇지 않은 매장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시와 산업통상부는 개문냉방에 대한 단속 없이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다만 캠페인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의 경우 개문냉방 단속에 나선 2015년, 2016년 계도(경고) 건수는 각각 65건, 121건이었다. 이 중 과태료 부과건수는 각각 3건, 2건에 불과했다. 개문냉방을 하다 적발된 경우 1차에는 경고, 2차부터 50만~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처럼 과거 단속 시에도 과태료 부과 건수가 거의 없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없이 단순 캠페인만으로 상인들을 설득하려 한다면 에너지 낭비 해결은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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