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하버의 로맨틱한 일몰. /사진=홍콩관광청

[홍콩 가을여행] ③ 감각파 여성들의 로맨틱 여행

#. 한때 꿈 많은 소녀였다. 일과 가정, 세상 모든 것을 책임질 기세로 살아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챙길 정도로 컸다. 이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이런 나를 잘 이해하는 친구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다. 정겨운 수다는 밤새도록 이어진다.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둔 채 멍 때려도 즐겁다.
높은 안목과 적극적인 인생관을 갖춘 ‘줌마렐라’의 가을 행선지는 홍콩이다. 가깝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불과 3시간 거리다. 곳곳에 세계적인 수준의 레스토랑과 카페, 쇼핑몰, 호텔이 즐비하다. 로맨틱한 항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야경은 푸르른 시절의 두근거림을 일깨운다. 야심한 시간에도 괜찮다. 세계에서 치안 좋기로 소문난 데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이곳저곳을 쏘다녀도 좋다.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을 품을 필요도 없다. 꿈 많던 시절, 영화 속 도시 정감은 그대로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향수를 찾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사진=홍콩관광청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난 타이퀀에서 향기로운 최고급 녹차를 음미하자. 코스모폴리탄의 거리를 헤매다 두 다리가 지칠 즈음 친구와 진토닉 한잔을 기울이는 건 어떨까. 나에게 딱 맞는 향수를 발견한 뒤 스타페리에 올라 저녁 바닷바람을 품어보자. 미쉐린 프렌치 레스토랑은 근사한 저녁을 선사한다. 이튿날 아침엔 부호들의 앞바다를 느긋하게 걸으며 지난시절을 되돌려보는 것도 좋다.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 홍콩이 근사한 인생여행을 선사한다.
◆문화유산된 옛 경찰서, 그리고 녹차 한잔


타이퀀의 찻집 록차 티하우스 분점.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의 란콰이퐁과 소호 사이 드넓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 아트는 이버 가을 홍콩에서 가장 ‘핫’한 공간이다. 1864년 지어진 센트럴경찰서를 문화유산 전시장과 현대미술 갤러리, 공연장으로 개조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홍콩 예술가들의 낯설고 경쾌한 감각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그저 즐겁다. 센터 곳곳에 입점한 레스토랑과 카페, 숍도 하나같이 근사하다. 독일의 예술서적 출판사 타셴(Taschen)이 아시아에 처음으로 오픈한 서점이 여기에 있다. 홍콩 최고의 찻집 록차 티하우스 분점은 질 좋은 보이차와 신선하고 다양한 녹차를 엄선해 판매한다. 점심시간에 들른다면 홍콩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채식 딤섬 코스를 맛볼 수 있다. 새로운 레스토랑 올드 베일리는 난징 전통 메뉴를 감각적으로 해석한 레스토랑이다. 등나무 가구와 목재로 완성한 바, 아름다운 의자들로 꾸민 실내에서 낭만적인 응접실에 초대 받은 듯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낼 수 있다.
◆나만의 향기… 향수의 신세계

파퓨머리 트레저 향수.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 서쪽의 한가로운 뒷골목. 19세기 파리로 시간을 돌린 듯 고풍스러운 가게가 발길을 붙든다. 파퓨머리 트레저는 프랑스어로 ‘조향사의 보물’을 뜻한다. 그 이름 그대로 전 세계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조향 브랜드들을 한 데 모았다. 온라인에서 온갖 귀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파퓨머리 트레저가 보유한 향수들은 낯설기만 하다. 영국 저널리스트 벨라 크레인이 론칭한 벨라 벨리시마부터 19세기 파리와 런던 귀족들에게 인기 높았던 유서 깊은 브랜드 도르세, 향수의 역사로부터 영감을 얻은 창조적 셀렉션 히스토리 드 퍼퓸까지 파퓨머리 트레저의 벽장은 황홀한 향기로 가득하다. 유럽의 크고 작은 향수 아틀리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계약을 맺은 열정 덕분이다. 도시에서 단 하나, 나만의 향기를 가지고 싶은 여성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지친 영혼 달래는 진토닉 처방전
닥터 펀. /사진=홍콩관광청

홍콩지하철(MTR) 센트럴역에서 랜드마크 쪽 출구를 향해 걷는다. 쇼핑몰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은밀하게 숨은 두 개의 문이 보인다. ‘닥터 펀의 진료실’이라는 팻말은 깜찍한 농담일 뿐. 이곳은 사실 약국을 콘셉트로 삼은 술집 겸 카페다. 닥터 펀즈 진 팔러의 주종목은 진이다. 최근 몇 년 간 진은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술이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구한 250개의 프리미엄 진을 갖췄다. 또 다양하고 독창적인 진토닉 메뉴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쉬웠다. 진의 전통과 매력을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냈다.
식물학 전문가인 닥터 펀은 방문객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특별 처방전을 만들어준다. 허브와 꽃, 씨앗 등 세상 어느 술보다 다양한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진의 특징을 스토리텔링에 녹여낸 셈이다. 바의 분위기는 스토리에 충실하다. 바텐더와 서버는 약사처럼 새하얀 가운을 입었다. 실내는 고풍스러운 약장과 녹색 식물로 꾸몄다. 대표 칵테일인 진토닉은 좁고 긴 글라스에 다채롭고 향기로운 가니시와 함께 나온다. 오렌지 껍질, 딸기, 식용 꽃 등의 재료는 모두 홍콩의 유기농 농장에서 재배한 것들이다. 나무를 그대로 베어낸 듯 독특한 플레이트 위에 굴 크림과 캐비어 등 럭셔리한 스낵을 가득 올린 애프터눈 티 세트도 인기 높다.

◆단돈 400원의 로맨틱 크루즈

화려한 야경과 조명쇼 속에 즐기는 스타페리 크루즈. /사진=홍콩관광청

낭만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항구와 스카이라인이 눈부신 야경을 자아내는 홍콩 같은 도시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도시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해거름 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스타페리 선상이다. 출렁이는 황금빛 파도 위에서 양쪽 해안의 풍광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처음 운행을 시작한 스타 페리는 여전히 홍콩 시민들의 사랑받는 교통수단이다.
완차이와 라마 섬 등 홍콩 곳곳의 부두로 연결되지만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빅토리아 하버와 침사추이를 잇는 노선이다. 승선권은 단돈 400원 남짓. 가을 저녁 바람이 뺨을 부드럽게 스치고 센트럴에서 출발한 배는 침사추이 오션 터미널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배에서 내리는 것이 아쉽다면 오션 터미널 옥상의 ‘오션덱’에서 석양의 낭만을 이어갈 수 있다. 270도 파노라마로 일몰을 바라볼 수 있는 데다 입장료는 무료다.


◆근사한 밤… 미쉐린 프렌치 레스토랑

미쉐린 원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에퓨레. /사진=홍콩관광청

침사추이의 에퓨레는 하버시티 오션 터미널 레벨4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달로와요 베이커리 뒤쪽 좁은 입구로 들어서면 바깥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우아한 풍경이 눈길을 맞는다. 은은한 조명과 꽃 장식, 샴페인 트레이가 완성하는 프랑스풍 분위기는 디너 코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에퓨레의 셰프 니콜라스 부탱은 정통 프랑스 요리의 탄탄한 기본기 위에 제철 식재료와 창조적인 레시피를 더했다. 프랑스 최고의 정육점으로 꼽히는 폴마드(Polmard)에서 공수해온 비프 타르타르, 홍합 샐러드와 함께 먹는 차가운 호박 수프 등 미식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계절 메뉴가 풍요롭게 이어진다. 에퓨레의 독보적인 메뉴와 빈티지 와인 컬렉션은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획득했다. 또 2016년부터 꾸준하게 홍콩 타틀러 베스트 레스토랑에도 이름을 올렸다. 점심 세트는 358 홍콩달러부터다. 6~8 코스가 제공되는 디너 세트는 988 홍콩달러부터 시작한다.
◆가을 해변과 커피 한잔의 여유

고즈넉한 리펄스 베이. /사진=홍콩관광청

여행 이튿날 센트럴에서 버스를 타고 약 30분 달리면 햇빛 아래 야자수가 눈부시게 흔들리는 새하얀 해변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떠나온 여행지에서 다시 한 번 짧은 여행을 시도해보고 싶을 때 리펄스 베이는 ‘여행지에서의 여행’에 더 없이 어울리는 목적지다. 홍콩 부유층의 거주지답게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비된 바닷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아름답다.
가을까지 수온이 따뜻한 홍콩 바다에서 헤엄을 치거나 일광욕을 즐기다가 문득 지겨워지면 더펄스 쇼핑 아케이드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도시 전체를 통틀어 맛있는 커피로 손꼽히는 커피 아카데믹스가 있다. 마누카 허니를 넣은 카페라테부터 오키나와산 비정제 흑설탕으로 독특한 풍미를 더한 커피, 오스만더스 꽃잎을 띄워 차처럼 가볍게 마시는 커피까지 특별한 메뉴들이 있다. 느긋한 오후, 칵테일 한 잔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커피 아카데믹스에는 홍콩 최고의 바텐더 안토니오 라이와의 협업으로 완성시킨 커피 칵테일도 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칵테일을 즐겨보고 싶다면 디카페인 럼 레이진을 추천한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비건 메뉴

채식 레스토랑 그린 커먼.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의 카인드 키친은 고급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그린 커먼 슈퍼마켓 내부에 자리한 채식 레스토랑이다. 유제품과 계란조차 사용하지 않는 100% 비건 메뉴가 과연 맛있을까. 카인드 키친에 들어서는 순간 의구심은 씻은 듯 사라진다. 카인드 키친의 메뉴는 채식주의자의 식생활이 얼마나 풍요롭고 만족스러울 수 있는지 증명한다. 식물성 고기인 옴니 포크는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와 탄탄면에 사용된다. 일본풍의 화이트 드래곤 라멘은 두유와 미소 된장으로 고소한 맛을 낸다. 홍콩의 유명한 유기농 차 제조사와 함께 선보이는 드링크 메뉴 역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최고급 찻잎과 오트 밀크로 우려낸 ‘홍콩 오트 밀크 티’, 코코넛 밀크를 추가한 무알코올 모히토 ‘코히토’ 등 신선하고 달콤한 음료로 디저트를 대신해보자.
◆레스케이프와 협업한 모트 32

모트 32의 베이징덕. /사진=홍콩관광청

지난여름 개장한 한국 레스케이프 호텔이 중식당을 준비하며 협업과 자문을 구한 곳이 바로 센트럴의 광둥식 레스토랑 모트 32였다. 스탠더드차터드은행 빌딩 지하, 모트 32는 현란한 나선 계단 입구와 세련된 재즈 음악으로 손님을 맞는다. 레스토랑의 작명은 태평양 건너의 대도시에서 비롯했다. 1851년 하나의 도시로서 막 기지개를 펴던 뉴욕의 첫 중국 잡화점이 모트 스트리트 32번지에 문을 열었다. 모트 32의 어둡고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는 당시 뉴욕의 거친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메뉴 역시 광둥 전통 요리에 서구의 미감을 섞었다. 블랙 트러플로 향을 낸 닭고기 냉채, 털게와 문어로 속을 채운 소룡포, 이베리코 돼지 바비큐 등 이색적인 메뉴들은 한끼 식사를 ‘인생의 만찬'으로 격상시킨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메뉴는 베이징덕이다. 사과나무 장작으로 42일간 구워낸 풍미가 일품이다. <사진·자료제공=홍콩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