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행안부제공)© 뉴스1

(서울=뉴스1) 김진희 기자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3·1절을 맞아 3·1운동에 앞장선 48인의 판결 기록물을 복원했다고 27일 밝혔다.
복원된 기록물은 3·1 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등 민족대표 뿐만 아니라 그 외 핵심 참가자 17인을 포함한 판결문 1149매다.

48명은 1919년 3·1 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의 기초와 서명, 인쇄 및 배포, 만세 시위 등을 이끈 인물들이다.


판결문에는 48인의 독립선언서 준비과정 등 3·1운동 활동 전반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체포(1919년 3월1일)부터 최종 판결(1920년 10월30일)까지 1년 7개월 동안 경성지방법원, 고등법원, 경성지방법원, 경성복심법원을 거친 재판 과정과 판결 결과 등이 기록돼 있다.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1919년 1월, 손병희, 최린 등 천도계의 발의로 시작해 최린이 최남선과 접촉하고 이어 기독교 이승훈, 불교계 한용운과 박상규도 합세하는 등 종교계를 비롯해 학생 세력까지 규합해 나가는 과정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최남선은 '우리는 이에 우리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 민족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이후 김홍규가 2만1000매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미리 정한 지역 배부책을 통해 배포했다.


3월1일 오후 2시 민족대표자들은 명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학생과 일반 시민들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평양, 진남포, 의주, 원산 등 지방 각지에서도 조직적이고 동시 다발적으로 3·1운동이 됐다.

판결문을 통해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은 명월관에서, 나머지 핵심 참가자는 경성, 수안군, 의주읍, 일본 동경 등 각 지역 독립운동 현장에서 체포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경성지방법원 예심 판결문에서 48인에 대해 '내란죄'를 적용해 조선고등법원으로 넘겼으나, 고등법원은 이 사건이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돌려보낸 사실도 담겨 있다.

하지만 경성법원은 공소 불수리에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해 이후 1년 7개월간 재판이 이어지게 된다. 경성복심법원 판결문을 통해 최종적으로 48인 중 37인은 '보안법', '출판법',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등을 적용해 징역 1~3년형의 유죄판결이 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복원 처리 전후 모습.(행안부제공)© 뉴스1

국가기록원은 "48인의 판결 기록에 3·1운동 전개 과정 및 활동 전반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재판 과정, 당시 일제가 독립운동가에게 내리려 했던 처벌,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사건 규정 등 3·1운동 관련 내용이 폭넓게 담겨 있어 독립운동사 연구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도형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3·1운동은 한국민이 전 세계에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선포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과 중요 관련자 48인이 독립을 선언하는 역사적 사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 것이 '판결문' 자료"라며 "독립선언 주도자 48인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판결문' 자료는 3·1운동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록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최재희 국가기록원 원장은 "3·1절을 맞아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이었던 독립의 도화선이 된 3·1운동 관련 선열들의 기록물을 복원하게 돼 뜻깊다"며 "48인의 판결문 복원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 선열들의 흘린 피와 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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