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소방서 진압3대장 전상기 소방경. / 사진=이한듬 기자
매년 반복되는 혈액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인 소방관이 있다. 43년간 공식적으로 한 헌혈만 672회, 비공식기록을 더하면 737회에 달한다. 주변 사람에게도 헌혈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헌혈 전도사'를 자처한다. 서울 광진소방서 진압3대장을 맡고 있는 37년차 베테랑 소방관 전상기 소방경(60·사진)의 이야기다. 올해 정년을 앞둔 전 소방경은 은퇴 후에도 헌혈을 지속해 1000회를 채우겠다고 다짐한다.
친구 위해 시작한 헌혈… 정부 표창까지
전 소방경은 1986년에 소방관으로 배명을 받았다. 경상북도 문경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의용소방대로 활약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그는 "시골에서 살다 보니 별도의 소방서가 없어서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의용소방대를 조직했는데 아버지가 의용소방대장을 맡으셨다"며 "불을 끄는 것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됐다"고 회상했다.
전 소방경이 헌혈을 시작한 건 소방관이 되기 전인 1980년부터다. 당시 군에 입대한 친구가 다쳐 병문안을 갔다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혈을 한 게 첫 시작이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끊임없이 전해지는 혈액 수급 부족 문제를 접하면서 헌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천에 옮겼다. 소방관으로서의 경험도 헌혈에 영향을 줬다. 전 소방경은 "직업 특성상 환자들이나 안타까운 상황을 많이 봐왔는데 이를 통해 헌혈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헌혈은 올해로 43년째다. 대한적십자사에 기록된 전 소방경의 공식 헌혈 횟수만 672회다. 비공식적으로 진행한 헌혈도 65회다. 총 737회나 헌혈을 한 것이다. 가족, 동료 소방관 등에게 헌혈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전 소방경은 "처음에는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데 헌혈을 꾸준히 이어갈지는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 소방경은 헌혈을 위해 건강관리에도 만전을 기한다. 술과 담배는 멀리하고 식단관리도 철저히 한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보약이나 건강보조제품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약 성분이 자칫 간수치를 높여 헌혈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헌혈은 아픈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공여자의 건강이 좋지 못하면 자칫 수여자에게도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꾸준히 헌혈을 이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전 소방경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서울 광진소방서 진압3대장 전상기 소방경. / 사진=이한듬 기자
소외계층 청소년 돕는 '키다리 아저씨'
전 소방경의 선행은 헌혈에만 그치지 않는다. 관할지역 내 소외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광진구 자원봉사센터 산하 봉사단 중 한 곳에 자원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독거노인 못지않게 소년소녀가장의 어려움도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
전 소방경은 "1996년에 우연한 기회로 누나와 둘이 사는 중학교 남학생을 알게 돼 후원을 하게 됐다"며 "보통 소년소녀가장은 생계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는데 이 학생은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갔고 이후에 박사까지 마친 뒤 현재 미국에 유학을 갔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후원은 매월 전 소방경 개인 월급을 쪼개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지원하며 후원자 이름은 익명을 원칙으로 한다. 그는 "아이들이 후원자가 소방관 아저씨라는 정도만 안다"며 "사람 마음이란 게 가끔은 내가 누군지 알리고 싶기도 한데 막상 하려니 안하게 된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1996년부터 전 소방경이 후원한 아이들만 12명이다. 전 소방경은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한다"며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현재는 11남매를 둔 다문화 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전 소방경은 "첫째와 둘째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후원을 마쳤고 지금은 셋째를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전 소방경은 소년소녀가장 외에도 적십자, 성동종합복지관, 성가복지병원, 자양종합사회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에 20년 넘게 후원금을 기부하고 있다. 월급을 쪼개 하는 기부인 만큼 가족들이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술과 담배도 안하고 나를 위해 쓰는 돈이 없어 그만큼 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며 "최대한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제시하는 하는 목표가 1000회"라며 "혈액 수급 부족은 항상 반복되는 문제인 만큼 더 많은 사람이 헌혈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