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한국 면세점의 지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영국 면세 전문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부터 중국 국영면세점그룹(CDFG)이 세계 1위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위스 면세점 기업인 듀프리가 9조389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롯데를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CDFG와 듀프리가 약진하는 동안 국내 면세점은 부진했다. 롯데와 신라는 전년 대비 한 계단 내린 각각 3, 4위를 기록했다. 2019년까지 세계 면세점 순위 톱3를 스위스와 한국 면세점(롯데·신라)이 차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속 쓰린 결과다.
CDFG가 세계 면세점 1위로 올라선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컸다. 중국은 2018년 하이난성을 면세특구로 지정했다. 하이난성 면세점 이용 시 자국민에게도 면세 혜택을 주는 내국인 면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면세 한도도 10만위안(약 1821만원)으로 늘리고 면세품목도 45가지까지 확대했다. 1회 구매 건수 한도의 경우 향수는 횟수 제한이 없고 화장품은 30개까지 가능하다. 하이난을 다녀가면 180일까지 온라인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따이공(代工·보따리상)을 내국인 면세 제도를 통해 하이난으로 끌어들여 내수를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기간 국내 면세점은 크게 타격을 받았다. 국경이 닫히면서 국내 면세점이 의존해오던 따이공 이동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고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노원구갑)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면세점별 매출액 현황'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2019년 9조3539억원에서 2022년 5조3469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신라면세점은 6조5873억원에서 4조3505억원으로 감소했다.
하이난 면세점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자 국내에서도 규제 완화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 업계를 지원하고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관세청 시행규칙을 고쳤다. 먼저 5000달러(약 650만원)였던 내국인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은 면세점에서 한도 제한 없이 마음껏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600달러(약 77만원)인 면세 한도는 유지됐다. 물건은 제한 없이 살 수 있지만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금액은 600달러란 의미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반쪽짜리 지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구매 한도를 폐지하면서 면세 한도를 유지하는 것은 생색내기식의 규제 완화"라며 "중국은 하이난 면세 한도를 크게 늘리면서 세수에서 영향이 있었겠지만 이를 포기하면서 고용 창출, 면세 산업 확대 등 더 큰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면세산업 재도약의 원년으로 꼽힌다. 면세 한도 상향, 매출 연동식의 특허수수료 재책정 등 지원책 강화가 필요할 때다. 중국의 사례를 통해 규제 완화가 면세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은 증명됐다. 정부 차원에서 면세업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1위 탈환은 쉽지 않다. 때를 놓치면 면세업은 이대로 중국에 1위를 내준 산업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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