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시내의 한 BMW 전시장에서 신형 iX3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1억원에 가까운 프리미엄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판매 일선의 딜러조차 '심장'인 배터리의 제조사를 확답하지 못한다. 세 개의 후보군이 있다는 둥, 일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둥 모호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BMW는 신형 iX3를 홍보하며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생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 마케팅이다. 유럽산 전기차라는 타이틀은 소비자들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세심한 조립 품질, 엄격한 유럽의 환경 및 안전 기준,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BMW의 마케팅은 교묘한 정보의 왜곡을 일으킨다. 조립 국가인 헝가리를 강조함으로써 정작 차 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배터리 국적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배터리 정보를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의 온라인 사전 예약 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확인하려면 스크롤을 맨 하단까지 내려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회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배터리의 밀도를 높였다는 말 뿐 제조사를 언급한 적은 없다.
이러한 행태는 과거 iX3가 겪었던 '학습효과'에서 기인한 우회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BMW는 iX3 모델을 유럽에서 생산하면서도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무늬만 유럽차'라는 오명을 썼던 BMW 입장에서는 이번 신형 모델에서도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딜러들은 "헝가리에서 생산되니 걱정 마시라"는 말로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확답을 피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일본산 배터리 탑재설'을 흘리며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영업 현장의 숙지 미달로 치부하기엔 부족하다. 본사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전달되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오는 3분기 국내 출시되는 신형 iX3에는 중국 EVE에너지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EVE에너지는 BMW의 신규 파트너사로,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BMW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메이드 인 유럽'이라는 이름표 안에는 결국 중국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배터리가 들어간다.
중국산 배터리의 기술력이 과거보다 진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소비자가 내가 사는 물건의 핵심 부품이 어디 제품인지 정확히 알고 구매할 권리'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배터리 안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극에 달해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브랜드 네임밸류나 조립 국가만을 보지 않는다. 어떤 셀이 들어갔는지, 에너지 밀도와 화재 안전성은 어떠한지를 직접 따져보고 선택하고자 한다.
BMW가 진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한다면 생산지의 후광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품질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헝가리산'이라는 수식어가 배터리 제조사를 가리는 가림막이 돼서는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마케팅은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눈을 속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독이다.
전기차 1억원 시대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정보의 약자가 아니다. 제조사가 정보를 파편화하고 은폐할수록 시장의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에 공개하고, 왜 그 배터리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배터리가 헝가리산 차체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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