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8개 대학에서 일제히 참정권 훼손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열린 이날, 연세대에서도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모(26)씨는 시국선언에 참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정치는 우파 성향의 6070세대와 좌파 성향의 4050세대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인들은 우리(2030세대)를 신경 쓰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의 투표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니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이걸 보고 느꼈죠. 2030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구나."
김 씨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시위'에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엿새간 꼬박 참석했다고 했다.
"솔직히 시위 현장에 가보면 허공에다 대고 외치는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해서 바뀔까' 이런 생각도 든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예전에는 '나 하나 안 가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지금은 '나라도 가자'는 생각이에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영향력도 커질 것 아니에요. 그럴 때 (정치권도) '2030세대를 무시하면 안 되겠네. 이들을 위한 정책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연세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김진화(24)씨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게 자유민주주의이고 그걸 위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주는 것인데, 그 근간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며 "예전엔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 권리를 빼앗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 참석했다. 나처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이 생긴 청년들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모(25)씨는 "국민주권으로 만들어진 나라에서 참정권이 훼손됐다는 것은 비상계엄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인데,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 그 정신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왜 침묵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지향이나 관점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고, 그 차이는 갈등의 불씨가 됐다.
연세대 시국선언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한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극우들은 이번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비상계엄과 부정선거를 옹호하고 서부지법 폭동을 긍정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 복귀를 주장하는 인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하자 서너 명의 학생들이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고려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최모(24) 씨는 "올림픽공원 시위는 근본적으로 참정권 침해에 대한 국민의 외침이었는데, 지금은 정치색이 짙어지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위를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치권이 과연 청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 이를 짚기 위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한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현호(23)씨는 "불경기로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 참정권을 침해받았다는 생각이 드니 좌우 가리지 않고 화가 난 것"이라며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끝낼 게 아니라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을 불러서 국회 등에서 열린 소통을 한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시국선언에 모인 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전공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시국선언과 같은 활동을 통해) 차근차근 실력을 기르고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폭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투표다운 투표가 없어지는 세상이 오지 않으려면 학생들과 기성세대가 같이 호흡하며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라. (청년들이) 이 나라의 미래이며,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는 주권자다. 그러나 국가는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는) 이 과정을 끝까지 감시할 것이다. 민주시민답게 민주시민으로서 공론장으로 모이자. 자유를 잃은 공동체는 복종으로, 정의를 잃은 국가는 폭력으로, 진리를 잃은 시대는 끝내 허위와 선동으로 쇠락한다. 자유, 정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는 선봉을 자처하겠다."
이 위원장의 외침, 그리고 학생들의 함성이 이날 밤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민주광장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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