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사랑에 빠지다.



<b>첫 만남에 대하여</b>

자전거와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더라?

중학교 3학년. 여의도 공원에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성인용 사이클을 탈 때 어린이용 자전거에 앉아서 낑낑거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들보다 자전거를 늦게 배운 이유는 순전히 사는 곳이 산꼭대기였기 때문이다. 겨울엔 친구들이 가지지 못하는 썰매를 가질 수 있었으니, 자전거를 못 탄다거나 내 소유의 자전거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부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자전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언제였더라?

대학 시절 '철티비(유사산악자전거)'를 무료로 분양(?)받고 나서, 본격적인 자전거 타기가 시작되었다. 제대 복학생과 자전거. 딱히 말 붙일 사람도 없고, 많이 변해 있는 환경과 법칙에 일방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이방인에게 자전거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어색하고 애매한 상황을 모면하게 해 주는 데에는 적격이었다. 가령 수업이 끝나고, 같이 걷기에는 어색하고 같이 걷지 않을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는 '먼저 갈게'라며, 자전거를 타고 묘한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철티비는 어느 맑은 날, 맑은 정신으로 개천 바닥으로 함께 추락한 후 스포크(바퀴살) 몇 개가 부러지고 림(굴렁쇠)이 휘어 더는 달릴 수 없게 될 때까지, 장거리 운행과 언덕 오르기, 상당한 속도 등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정말 자전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더라?



<b>자전거와 사랑에 빠지다</b>

아, 그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평소 자리에 눕기만 하면 잠에 빠져드는 내게 이상이 생긴 것은 대학 마지막 학기였다. 불면증. 졸업이라는 큰 변화를 앞두고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다는 죄책감, 당장에라도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끝이 없는 고민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스꽝스럽게도 '고민하기 싫다'였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 하고 질문의 방향을 틀어버린 순간, 잠은 다시 찾아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요술 풍선을 팔며 자전거로 여행을 하자는 계획이 섰다. 자전거 여행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풍선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얼마의 돈과 바꿀 수 있는 최적의 물건이라고 믿었다. 풍선 열 개는 한 끼 식사가 되고, 오십 개는 잠자리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자전거. 철티비가 전부였던 내 마음속에 알루미늄 프레임이, 24단이, 프런트샥(충격완화장치)이 들어왔다. 구동계의 등급을 외우게 되고, 안전 장구류와 유니폼은 필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를 구입해야 했으니, 돈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차근차근 긴 여행의 동반자가 될 자전거의 모습을 구체화 시켜 가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었다.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자전거는 나의 미래였고, 연인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이때의 내 마음이야말로 자전거를 향한 가장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b>그 이후 이야기</b>

오토바이 사고로 제법 긴 시간 요양이 필요해지면서 자전거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내게는 하얗게 도색된 알루미늄 프레임에 24단 기어, 황소 뿔처럼 공격적으로 보이는 바엔드(손잡이), 구름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하늘색 샥이 달린 자전거 한 대가 생겼다. 긴 여행은 아니어도 많은 시간을 함께하였고, 주행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항상 도난을 염려해야 했다. 직접 속도계와 안전등을 달았고, 펑크를 때우고 체인을 갈기도 하였다.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때로는 무모하게 몰기도 하였다. 물론 거칠게 타면서 생긴 작은 상처들을 보며 깊이 마음 아파했다. 거주지를 옮기면서 사이클을 한 대 더 샀고, 사람이 떠났고, 먼저 산 자전거가 아주 낡아서 폐기 처분했고, 사람을 만났고 사이클은 도난당했고, 지금은 생활자전거와 산악자전거 중간쯤 되는 녀석과 함께 있다. 여전히 나는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판단할 때는 안장에서 내릴 때 머릿속에 그 생각이 남아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때때로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기도 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공격적인 주행 방법 따위를 고민한다. 장거리나 업힐(언덕 오르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표정은 나를 즐겁게 한다.



지금 내 옷 속에는 목과 어깨가 나뉘는 부분의 아래쪽, 어깨와 팔꿈치의 중간 부분의 안쪽, 허벅지 중간 부분의 위쪽에 선명한 또 하나의 옷을 새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할 수 있으니까. 혹시 탈의실에서 옷을 벗었는데 피부에 또 하나의 옷을 새긴 사람을 만난다면 그를 홀로 있는 사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 또한 자전거를 사랑하여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새겨 넣은 사람일 테니 말이다.



※ 최건규 객원기자(수리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