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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7년. 스타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여고생들 사이로 파란색 차 한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어디선가 "포카리다~"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설명이 따라 붙는다.
'포카리= 97년 당시 토니안 개인차량의 애칭.'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깨알 같은 자막 한줄에 시청자는 1997년으로 소환 당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추억자극제로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의 기억이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이 시대에 10여년이라는 시간은 추억을 곱씹고도 남을 만큼 '옛날 얘기'가 됐다. 그러니 드라마의 여주인공 시원은 이렇게 외친다.
"아빠한텐 옛날 아니라도 내한테는 옛날이다."
1993년 5월에 선보인 소나타Ⅱ는 X세대, 신세대라 불리는 오렌지족과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차종이다.
사진_자료제공 현대자동차
◆2012 문화산업 키워드는 'Back to the 1990'
사실 조짐은 이미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90년대 대학시절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내 한국 멜로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고,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벽에 거는 TV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며 시청률 25%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영화와 드라마의 복고 분위기는 가요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70년대생 남자들의 성장기를 풀어낸 가수 싸이의 <77학개론>은 타이틀 곡이 아닌데도 음원차트 4위까지 진입했다. 2030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클럽 역시 90년대 추억의 가요를 주요 콘셉트로 하는 '밤과 음악사이'가 대체했다. 홍대와 강남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을 중심으로 5~6곳의 지점이 성황 중이다.
90년대 복고문화의 정점을 찍은 <응답하라 1997> 역시 대중문화 산업계에서 '90년대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tvN은 지난 9월18일 종영을 앞두고 '응칠데이' 등을 따로 편성해 드라마 연속방영을 결정했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함께 부른 OST 'all for you' 등은 연일 음원시장을 석권하는 중이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신인임에도 배우로서 인정을 받으며 최근에는 각종 CF의 러브콜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90년대 복고문화의 부가수익 창출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이다. 콘텐츠의 힘이 커질수록 수익원이 다양화되고, 그로 인한 경제효과 역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1997>을 보자. 콘텐츠에 열광하는 시청자가 급증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인 서인국과 정은지가 듀엣으로 부른 'all for you'가 연일 음원차트 1위를 고수하는 등 음원 판매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또 조만간 감독판 OST도 출시할 예정인데, 예약주문 첫날인 지난 14일 이례적으로 하루만에 주문이 마감돼 추가 주문을 계획 중이다.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며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져 현재 콘텐츠 판매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J E&M 관계자는 "이제 막 종영된 작품이기 때문에 제작비 대비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수익 사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기대가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그룹 쿨(Cool)의 노래가 90년대 복고열풍에 힘입어
드라마OST로 리메이크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문화계 이어 기업에서도 '두드려라 1990'
'7080복고'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90년대 복고'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문화산업계 전반에 걸쳐 컨텐츠 생산자는 물론 주소비층까지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화평론가인 이광택 경희대 교수는 "7080년생들이 이미 30대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됐다"고 설명한다. 397세대가 콘텐츠 생산자로 성장하면서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낸 90년대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 이는 그대로 경제력이 왕성한 30대 소비자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며 문화소비주체로서의 힘 역시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쎄시봉만 하더라도 외국의 번안가요를 부르는 세대였다면 이른바 X세대는 '실체가 있는 문화'를 공유한 첫세대"라고 구별 짓는다. 특히 X세대를 지나 뒷세대로 갈수록 하나의 문화로 결집되기보다는 개인주의 경향이 강해진 점을 고려한다면 '집단이 공유한 마지막 문화세대'로서의 90년대 복고의 힘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현재 문화시장에서 90년대 복고문화를 되살려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과거의 7080 복고문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재현하고 소비하는 데 그쳤던 7080 복고문화와는 달리 90년대 복고문화는 당시의 문화를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 시절을 함께 공유한 이들뿐 아니라 새롭게 문화를 접하는 이들에게까지 콘텐츠의 매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90년대 문화' 자체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경제상품으로써의 가치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7>의 경우 그 세대였던 30대 초반의 여성층 못지 않게 10대들도 주시청자층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의 추억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90년대 문화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에는 확고하게 문화산업을 장악한 '90년대 복고 열풍'이 기업의 마케팅에서 활용되는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난 7일 네오위즈인터넷은 채팅서비스인 '세이클럽'에 과거 PC통신을 되살려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또 패션업계는 9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 입었던 청남방을 새로운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 교수는 "90년대 복고 열풍은 단순한 문화의 소비라기보다는 팍팍한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봐야 한다"며 "다양한 개성이 분출되던 90년대 문화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현대의 문화코드와 잘 결합한다면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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