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과 강원·충북지역의 지방은행 설립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12월19일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지방은행 설립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지방은행 설립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대선 후보들이 유권자를 의식해 지방은행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했지만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면 번복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다.
지방은행 설립에 대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도 아직까지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가뜩이나 글로벌금융 악재와 부실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국내 금융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새 은행이 설립되면 은행권 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탓이다.
이미지_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답답한 지자체, 대책안 마련에 부심
지방은행 설립이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음에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해답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자본금과 실효성 때문이다. 특히 (구)충청은행과 (구)강원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하나은행과 (구)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매각되는 불운을 맞은 바 있다. 이미 다른 은행에 팔린 은행을 또다시 새로 설립하는 만큼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으로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은행 설립 이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자본금도 문제다. 지방은행이 설립되려면 25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 투자비용은 이보다 5~10배 수준인 1000억~2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터넷뱅킹과 스마트뱅킹 등 시중은행의 전산관련 투자규모가 커지고 있고 투자비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드와 외환, 리스크관리, 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를 운영해야 돼 관련 인력과 시설 등도 갖춰야 한다.
지자체 관계자는 "투자비용을 최소 1000억원으로 잡았는데 실질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며 "투자규모가 높고 은행 설립 자격요건에 맞는 투자자를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별도의 팀이 구성되지 않았다"며 "설립규모와 금융당국 설립인가 절차 등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방은행이 설립될 경우 최소 투자비용의 30~40%가량을 정부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정부가 지방은행 설립의지가 강하고 지원규모를 확정할 경우 투자유치도 지금보다 수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은행 설립, 내년부터 진짜 싸움
그렇다고 정부와 금융당국이 지자체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묵살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내년을 기점으로 진짜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야 대통령 후보가 모두 지방은행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한 만큼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본격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일부 지자체는 내년 초에 설립추진위원회 테스크포스팀(TFT) 구성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현재 지방은행 설립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은 대전광역시다. 대전은 현재 대전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대전은행(가칭) 설립 준비에 한창이다.
강원도청은 향후 대전상공회의소와 의견을 공조해 공동으로 움직일 방침이다. 강원도는 현재 지방은행 설립을 위해 직접 나서 줄 경제단체가 미미한 상황이다. 현재 강원도에는 7~8개의 상공회의소가 설립돼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좀처럼 뭉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청의 한 관계자는 "대전은 대전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정부에 의견을 피력하고 대전광역시청이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인데 우리는 지방은행 설립을 위해 총대를 매줄 경제단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지방은행 설립은 자격요건이 충분한 민간에서 움직여야 좀 더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전광역시가 아무래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만약 대전은행 설립이 가시화될 경우 상황에 따라 서로의 의견을 공조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각 지자체가 별도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힘을 합쳐 움직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충북지역은 아직까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충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지방은행 설립은)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지금 새롭게 추진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해당지역에 대해 지방은행 설립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방은행 설립해야 하는 이유
강원도와 대전, 충북지역이 지방은행 설립에 주력하는 이유는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예컨대 지역에서 발생한 유동성은 내부지역 발전에 쓰여야 하는데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는 것.
지역주민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차별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일부 은행들이 자기 관할지역에서는 대출금리는 싸게, 예금금리는 높게 책정하면서 지방은행이 없는 대전과 강원도 주민에게는 상대적으로 이자는 낮고 대출금리는 높게 책정한다는 지적이다.
대전발전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지방은행이 없는 충청권의 인구·지역내총생산(GRDP)·사업체수와 같은 실물경제 구성비는 전국의 10∼12% 수준이지만, 금융부문 GRDP는 이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대출금과 은행예금이 각각 5.6%와 5.3%에 그쳤으며, 금융·보험의 비중은 3.1%에 머물렀다.
금융입지지수(LQ지수) 추이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LQ지수는 금융산업이 실물경제에 비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로, 1보다 크면 평균이상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 1.40이던 수도권의 예금 LQ지수는 2010년 1.50으로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충청권은 0.54에서 0.45로 오히려 하락했다. 또 지방 전체의 LQ지수 역시 이 기간 0.65에서 0.53으로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지방은행이 없는 지역의 경우 주민들이 대부분 시중은행이나 다른 지역의 지방은행과 거래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은행들이 우리 지역에서 수익을 냈음에도 수익금이 대부분 본사나 수도권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라며 "지방은행이 설립될 경우 이러한 역외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역외유출을 줄이면 수익은 대부분 주민과 지역 SOC(사회간접자본)에 쓰일 수 있다"면서 지역은행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