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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수익에 해외 브랜드 선호… '패션통' 오너 영향 지적도
지난해 한섬은 명품브랜드 '지방시'와 '셀린느'의 판권을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넘겨줘야 했다. 계약이 만료된 탓이었지만 해외브랜드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경쟁사에 알짜 사업을 내준 것은 뼈아팠다. '모터백'으로 유명한 명품브랜드 '발렌시아가' 역시 국내 직진출을 선언하며 한섬과 선을 그은 탓에 한섬으로서는 자존심에 적잖이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러한 전철을 밟은 탓일까. 한섬은 지난해 초 현대백화점에 인수된 이후 해외브랜드 판권 수입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 이 같은 양상은 다른 패션기업도 마찬가지다. 패션기업의 먹고 먹히는 해외브랜드 판권 사업은 점점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불황의 여파가 크게 작용하는 패션업계에서 비교적 경기를 덜 타는 고가의 해외브랜드로 안정된 수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브랜드를 키워내기보다 손쉬운 판권 수입사업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주력은 국내브랜드, 수입 열중 왜?
지난해 초 현대백화점과 한 배를 탄 한섬은 이후 해외브랜드 수입에 더욱 열중하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 초에는 '엘리자베스 앤 제임스', '히스테릭글라마', '일레븐티', '이로' 등 4개 브랜드의 판권을 사왔다. 이 중 '이로'는 현대백화점 이외의 백화점 3곳에 입점하면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초반 부진했던 '엘리자베스 앤 제임스' 또한 신세계 본점에 론칭하면서 매출액 신장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최성열 한섬 해외패션사업부 팀장은 "지방시나 셀린느가 신세계인터내셔날로 판권이 이전된 것은 당시만 해도 한섬이 적극적으로 해외브랜드 유치에 나서기 전이었다"며 "현대백화점이 한섬을 인수한 이후 해외브랜드 판권 사업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전체 38개 브랜드 중 34개가 해외브랜드일 정도로 해외브랜드 비중이 높음에도 해외브랜드 수 늘리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지방시'와 '셀린느'에 이어 올해 9월에는 스페인의 명품브랜드인 '로에베'의 한국 판권을 가져오며 브랜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LG패션은 올해 8월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알레그리'를 들여온 데 이어 덴마크 가방 브랜드 '데카던트', 프랑스 신발브랜드 '벤시몽' 등 최근 3년간 10개 수입브랜드와 국내 판매권 계약을 맺었다. 전개 중인 총 27개 브랜드 가운데 16개가 해외 브랜드에 달한다.
LG패션은 2009년부터 해외 컨템포러리 패션브랜드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해왔다. 컨템포러리 패션이란 최신 경향을 반영한 중·고가의 패션경향이다. 명품브랜드에 버금가는 가격과 고품질을 내세워 최근 여성복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 LG패션은 컨템포러리 브랜드인 레오나드, 이자벨마랑, 조셉, 바네사브루노, 닐바렛 등과 독점 판권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들은 전체 매출액에서 10%안팎의 비중을 차지한다.
패션기업이 전에 없이 해외브랜드 판권사업에 매진하는 것은 그만큼 수익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경우 매출액이 국내브랜드가 4041억원으로 해외브랜드(3842억원)보다 높지만 알짜 수익은 해외브랜드가 내고 있었다. 해외브랜드의 영업이익이 286억원인 반면, 국내브랜드는 46억원에 불과했던 것. 이렇다보니 어렵게 상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을 벌이기보다 이름만으로도 고객이 몰리는 해외브랜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해외브랜드 수입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에 대해서 기업관계자들은 한사코 말을 아꼈다. 한섬 관계자는 "타임, 마인 등 국내브랜드는 이미 시장이 포화됐기 때문에 해외브랜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을 뿐 국내브랜드를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패션기업들은 해외브랜드 수입에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로 백화점 진출이 용이하다는 점을 들었다. 백화점에 입점했는지 여부가 전체 매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백화점 내 좋은 장소에서 영업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실적을 내줘야 하는데 유통업체는 새로운 브랜드가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해외브랜드는 소비자의 반응이 빠르고 브랜드력 때문인지 백화점 측에서도 입점을 환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를 계열사로 가진 패션기업은 오히려 해외브랜드가 먼저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유통망이 든든히 갖춰져 있어 국내 진출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나 한섬이 최근 해외브랜드 수입이 두드러진 이유다.
반면 국내브랜드는 고가의 해외브랜드에 밀려 백화점에서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많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최근 리모델링을 단행하면서 50여개의 국내 브랜드를 철수시켰다. 최연옥, 신장경, 쉬즈미스, 요하넥스, 시슬리, 쿠아, 에고이스트 등 50개 달하는 국내 브랜드가 철수하고 대신 이 자리는 40여개의 수입브랜드가 차지했다. 최근 리뉴얼을 마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역시 '하이 브랜드'를 지향하며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 명품관으로 매장을 채웠다.
◆ 해외브랜드 선호하는 오너성향 탓?
패션브랜드가 해외브랜드 사업에 열중하는 것이 오너의 성향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일모직, LG패션,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현대백화점)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대부분 해외 경험이 많은 재벌 3세들 이어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딸인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실질적인 오너나 다름없다. 최대주주는 부친인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지분율 21.68%)이지만 정 부사장의 지분율은 0.43%로 오빠인 정용진 사장(0.11%)보다 높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신세계백화점 해외사업부로부터 독립할 당시부터 정 부사장이 경영권을 쥐고 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를 졸업한 그는 '패션통'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과도 견줄 정도로 안목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의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 부사장은 구호, 르베이지 등 국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해외브랜드 수입에도 집중했다. 이 부사장은 1년에 2~3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며 파리, 뉴욕, 밀라노 등지에서 트렌드를 살피며 느낌이 오는 브랜드는 과감히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학 석사 출신인 구본걸 LG패션 회장은 LG패션을 패션회사가 아닌 브랜드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이러한 경영은 브랜드력이 강한 해외브랜드 수입에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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