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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은 무엇일까? 영국의 사회과학자인 휴 로더 교수는 그의 동료 학자들과 저술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학부모에게 교육은 자녀의 삶의 미래를 위한 길잡이요, 젊은이들에게는 노동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자격을 획득함이요, 학교의 선생님들에게는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지혜를 그들의 제자에게 입혀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 개념은 지난 수 십년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환경의 변화는 어떠한가?
지금의 교육은 그 역할이 일자리로만 연결돼야 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거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실업은 당사자인 젊은이들은 물론 그 부모들에게까지 불만스러운 문제다. 자연스럽게 정치인과 정부 모두에게 두 배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에게는 세계시장에서 제품의 가격과 품질은 물론 혁신성과 창의성까지 경쟁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있는 모범답안 그 너머의 해결책을 내놓는 인재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젊은이, 학부모, 기업, 국가 모두에게 상황은 더욱 절박해졌고 결국 문제해결의 돌파구로써 교육의 경제적 역할에 관심이 모아졌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전 세계가 비슷한 처지다.
그렇다면 그간의 대응 노력은 어떻게 반영됐는가? 그 결과의 현실은 이상적 바램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가? 무엇보다도 대중적인 대학교육이 팽창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돈을 버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얼마만큼 보증될 지는 의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5 국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조사’에 따르면 취업한 박사학위 근로자 중 40%가 비정규직이며, 인문계열의 60%는 3000만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뿌리깊은 교육 만능적 접근을 통해 소수가 아닌 다수의 개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낮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어쩌면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배움은 시작되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배움은 평생동안 지속된다. 삶의 과정에서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평생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학교 안에서만의 교육으로 인생 전반의 승부를 걸던 확률게임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조금만 내다봐도 추측해볼 수 있다.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과거와 달리 빠른 속도로 두터워지고 있다. 이들은 학습과 교육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 전통적인 학습 방식으로 새로운 노년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들에게는 경제적 활동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까? 이들의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는 이러한 시대에 보다 나은 [평생]교육을 위해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뒤르껭은 교육이란 “어른세대가 사회생활을 하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젊은세대]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이고, 그 목적이 사회 전체적으로 또한 특별하게 요구되는 물리적 지적 도덕적 상태가 개발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했다.
교과서와 그 교과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교육방식에 안주하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고 빠르다. 서양에 ‘식물을 돌보는 것은 흙이고, 정원사는 흙을 돌보는 사람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사회에서 보다 나은 삶을 보다 올바르게 영위하도록 돕고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라면, 바뀌어버린 또 더 많이 바뀌어갈 경제사회에서 누구나 평생 충분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진리를 잘 공급받을 수 있도록 토양에 관심을 더욱 쏟아 부어야 한다. 그 때가 지금이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본 기사는 <하이하이>(hi.moneyweek.co.kr) 제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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