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후 제 삶에 많은 시간이 주어졌죠. 남는 시간에 뭘하냐고요? 골프, 독서, 영화감상, 카드놀이, 요가, 화초재배를 즐기고 요리와 중국어를 배웁니다. 난 그저 내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어요.”


지난해 하반기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인턴>. 극 중 70세의 ‘액티브 시니어’ 벤 휘태커가 한 인터넷쇼핑몰회사에 제출한 자기소개 동영상에서 한 말이다. 한 기업의 부사장까지 지낸 후 은퇴한 벤 휘태커. 그는 풍요로운 노년의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시니어 인턴직에 지원한다. 이후 자신이 얻은 삶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베풀며 삶의 새로운 동력을 찾는다.

성수목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KASA) 회장(68)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현듯 이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관람 당시 20대였던 기자는 영화의 메시지를 오롯이 느끼기에 무리가 있었으나 성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성수목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KASA) 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은퇴, 제로베이스의 새로운 시작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미래창조과학부 소관 한국과학기술캠프협회(KASTEC) 사무실에서 만난 성수목 회장은 잘 차려입은 정장에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가 영화 속 벤 휘태커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른 아침 인터뷰 약속시간에 맞추려 급히 달려왔음에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다. 여유로운 미소 속에는 연륜과 열정이 동시에 내비쳤다.


정중히 내민 그의 명함에는 그가 맡은 수많은 직책이 빼곡히 적혀있다. 한국과학기술캠프협회장을 비롯해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관련 서적이 즐비한 그의 사무실이 이 직책들이 이름만 내건 것이 아닌 실제로 그가 열정을 갖고 하는 일임을 증명했다.

마주보고 앉아 은퇴 전 했던 일을 묻자 그저 한 회사에서 27년간 일했다고만 말한다. 은퇴와 동시에 화려했던 과거는 모두 추억으로 남겨뒀다는 것. 대신 그는 교육관련 활동을 하며 얻은 ‘호랑이 교장’이라는 닉네임으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현재 ‘호랑이교장’으로서 할 일이 많고 꿈도 많아 과거를 말할 이유가 없다. 주변 선배들을 보면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새로운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어디 사장이었는데…’라며 하는 과거 이야기는 새롭게 펼쳐질 삶에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누구보다 열정적인 액티브 시니어로 살아가는 그의 비결이다.

그는 대뜸 펜 2개를 엑스자로 엇갈려 테이블에 올려놨다. “젊어서부터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여기 겹친 부분, 즉 은퇴에 다다른다.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새로운 시작이다. 좁아진 두축이 다시 넓어지듯이 은퇴 이후의 삶은 더욱 넓은 세계이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150세시대, ‘취미’로는 부족하다

그는 시니어들이 100세가 아닌 150세를 내다보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보통 10년만 타고 바꾸는 자동차도 깨끗한 기름을 넣고 잘 관리하면 20년이 돼도 잘 달린다. 인간의 몸도 이와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다. 만약 은퇴 후 10~20년이 아닌 150세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골프나 등산 등 여가나 취미생활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주변의 80대 어르신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7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새로운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유한다. 어르신들은 모두 겉으론 “오래 살아 뭐하냐”며 웃어넘기지만 눈빛이 빛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다.

그가 떠올린 긴 삶을 지탱할 힘은 결국 ‘꿈’과 ‘의미’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며 살아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일’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의 목적이 돈이나 개인적 욕망이 아닌 ‘의미찾기’ 라는 게 중요하다. 은퇴 전까지의 치열한 경쟁이 아닌 사회에 기여하고 저마다의 지혜를 나누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액티브 시니어가 할 일이 참 많다. 현역은 아니지만 모두 한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가 설립된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 멘토들이 사회 곳곳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협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시니어에게 ‘꿈’ 심어주다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시니어들이 모인 단체다.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액티브시니어 전문가과정 수료생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협회는 아직 시작단계지만 벌써 한가지 ‘큰일’을 해냈다. 아마추어 시니어 연극 공연이 그것인데 협회 내에서 조직된 ‘카사드림연극단’이 <허생전>을 준비해 최근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모든 제작비용을 자체부담했고 연습기간 내내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30명 규모의 공연장에서 4회 공연하는 내내 150명이 넘는 유료관객이 찾아 열광했다. 성 회장은 “연극 한번 해본 적 없는 시니어들이 모여 연극을 했다는 걸 알고 많은 액티브 시니어들이 ‘꿈’을 가지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니어들이 모여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협회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일이 됐든 사회활동이 됐든 혼자 하면 힘들지만 여러사람이 함께하면 기적처럼 즐거움이 찾아온다”며 “결국 함께 할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이 액티브시니어협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