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살 자녀를 둔 김진실씨(가명)는 얼마 전 아이의 어린이집친구가 "ㅇㅇ네는 무슨 아파트 살아요?"라고 묻는데 당황했다. 김씨는 신축 다세대주택에 사는데 집 주변 학교나 성당을 설명해줘도 "그래서 아파트 이름이 뭐예요?"라는 질문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사는 집이 어디인지 순수하게 궁금한 마음인 것을 알지만 어린아이에게 '빌라'라는 말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다.


# 직장인 정지영씨(가명)는 얼마 전 신축빌라를 구입하려고 은행에 방문해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다. 서울에서 하루빨리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려면 10억원 넘는 아파트는 언감생심이고 신축빌라의 아파트못지 않은 설계와 보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 대출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은행 직원은 "아파트는 기성상품처럼 가격이 정해져있어 대출절차가 수월하지만 빌라는 직접 감정평가를 해야 한도가 나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정비용을 고객이 부담할 수도 있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부와 신분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한 가족, 한 사람의 다양한 스펙을 보여주는 브랜드다. 따라서 주택정책이나 대출 등의 제도운영 역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설계한다.

그러나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사는 국민은 지난해 통계청 조사 기준 341만가구(20%)에 달한다. 서울은 비중이 더 높아 104만가구(36%)다. 이들은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등에 산다. 엄연히 똑같은 권리를 가졌음에도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적 혜택에서 소외되고 이런 국가의 무관심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진다.

◆"'빌거'라는 말은 없어요"


최근 인터넷게시판을 떠들썩하게 만든 '빌거' 논란을 보면 사실은 비아파트에 대한 차별은 우리사회가 아닌 매스컴 등의 잘못된 정보로부터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빌거(빌라 사는 거지), 엘거(LH 사는 거지) 등의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비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인식이 얼마나 팽배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말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시민들의 말이다.


용산에 사는 주부 박모씨는 "주변사람이나 초등학생 자녀에게 빌거, 엘거라는 말을 아느냐고 물어봤을 때 전부 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면서 "인터넷이나 언론 등이 앞장서서 이런 말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 최모씨는 "아파트가격과 비교하면 빌라가격이 잘 오르지 않아 재테크 가치가 낮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보다 빠른 내집마련을 위해 빌라를 선택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지 계급을 나누는 문화로 가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아파트와 빌라간 가격격차는 더욱 커졌다. 서울시 조사결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은 2016년 6월 5억6292만원, 연립주택은 2억5193만원이었다. 올 3월에는 각각 7억원, 2억7184만원을 기록해 1년8개월 만에 가격차이가 1억원 이상 벌어졌다.

이런 주거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비아파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테크적인 면이 있지만 단지 내 인프라도 많은 이유를 차지한다. 특히 대단지 브랜드아파트의 경우 어린이놀이터와 운동시설은 물론 어린이집, 학교, 도서관 등의 교육시설을 갖춘 곳이 대부분이다.

소규모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도 이런 인프라를 갖추면 주거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재인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이런 정책이다.

정부가 서울 아파트값 폭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도권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학교와 회사가 먼 곳으로 서민·중산층을 내모는 정책보다 내집 주변 인프라를 개선시키는 정책이 더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