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S DB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농어촌 산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출세’(입신양명)하는 사람이 인구에 회자됐다. 이름을 아예 하용출(河龍出)이라고 짓는 사람도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하용출의 비법은 교육에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론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우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하용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고액 족집게 과외를 받지 못하더라도 방과 후와 공휴일에 입시학원에 가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나서서 스펙 쌓기에 나서지 않더라도 낮에 일하고 밤에 졸린 눈 부릅뜨고 공부하면 가능했다. 이른바 SKY에 들어가는 것이 돈 놓고 돈 먹기처럼 돼 있는 현재 교육입시제도 아래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신화(神話) 같은 이야기다.

과거 보려다 포기한 김구

신화는 백범 김구 주석이 젊었을 때도 있었다. 그는 열두살(1884년) 때 아버지를 졸라 힘들여 연 서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과거에 급제해 진사가 되고 양반이 돼 설움 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였다. 8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뒤 1892년 경과(慶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는 과거)를 보러 해주에 갔다. 청운의 품에 부풀었던 김창암(김구의 본명)은 과거장에 가서 크게 실망하고 과거를 단념했다.

과거 시험장에서 여러가지 비위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범일지’에 그때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돈만 많으면 과거도 할 수 있고 벼슬도 할 수 있다. 글을 모르는 부자들이 거유(巨儒)의 글을 기백량 기천량을 주고 사서 진사도 하고 급제도 했다. 이번 시험관은 누구인즉, 서울의 모 대신에 서간을 보내놓았으니 반드시 합격한다, 아무개는 시험관의 수청 기생에게 명주와 비단 몇 필을 선물했으니 이번에 꼭 급제한다…” 이런 얘기를 들은 뒤 그는 “내가 혈심(血心)을 다해 장래를 개척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인데 과거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내가 시를 짓고 부를 지어 과문 육체에 능통한다 해도 아무 선생, 아무 접장 모양으로 대서업자에 불과할지니 이제는 다른 길을 연구하리라”고 다짐한다.

과거에 응시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그는 아버지에게 “공부해서 입신양명하려는 과거의 악폐가 심해 제 공부가 아무리 뛰어나도 돈의 마력을 이겨내기 힘들 것인즉 공부는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뒤 관상 책을 좀 봤는데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는 글귀에 꽂혀 관상공부마저 그만뒀다. 그 뒤 병법 책을 읽어 훗날 동학 접주로 싸울 때 활용했다.

교육 비정상의 정상화

과거는 세습화된 귀족의 특권을 없애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과거로 뽑힌 사람들은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고 옳고 그른 것을 명확히 밝히고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데 노력했다. 물론 김구가 목격한 병폐가 나타나기 훨씬 전의 과거를 가리킨다.

근대화 과정에서 대학과 고시도 오염되기 전의 과거와 같은 순기능을 발휘했다. 재능만 있다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고시에 합격해 능력을 발휘했다. 신분과 계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위로 올라갈 길이 넓게 열려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순기능은 약화되고 과거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과 예일 대학의 도프케와 질리보티 경제학 교수는 ‘기울어진 교육’(Love, Money & Parenting)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느긋하게 내버려두는(혹은 어쩔 수 없이 방치하는) 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가 자신이 부모가 되자 난데없이 ‘헬리콥터 부모’와 ‘타이거 맘’이 되는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 어떤 대학을 졸업하느냐가 취업을 비롯한 평생을 좌우하는 정도가 커짐에 따라 부모들이 자녀 양육과 교육에 돈과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합리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계층 간 격차를 축소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할 교육이 거꾸로 개인의 삶을 옭아매고 계층 간 격차를 확대하며 사회갈등을 야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그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영재교육이다 선행학습이다 해서 아이들을 옭아맨다. 학교에 가면 점수를 매겨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운다. 대학에 가서 학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수능은 얼마나 잘 찍느냐는 테크닉으로 바뀐 지 오래다. ‘너와 내가 함께 잘 살자’는 교육과 시험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상대 깎아내리기 교육과 시험에 학생들이 신음하고 있다.

급기야 ‘코로나19 와중에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원이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닫자 일부 부유층 자제들은 일대일 또는 일대이 고액 집중과외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언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오늘 처음 아웃백에 갔다”

지난 10일 연세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다섯살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일용직 노동자인 아빠가 여덟살 언니와 (글쓴이를) 함께 키웠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언니는 상고에 갔고 사고로 일할 수 없게 된 아빠를 대신해 언니가 고등학교 학비를 댔다. 수능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은 그는 연대 의대에 합격했다.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밀린 월세 300만원을 갚고 나머지 돈 400만원을 아빠와 언니에게 나눠 줬다…”

이 의대생의 하용출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담담한 글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아픔이 절절히 전해온다. 참기 힘들었을 어려움을 인내로 이겨낸 그 의지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이런 성공담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또 ‘과외해서 번 돈’이 미련을 남게 만든다. 슬픔과 미련을 말끔히 씻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1항)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4항)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헌법에서 정한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교육받을 기회가 평등하고 교육받는 과정이 공정하며, 교육받은 결과가 정의로운가. 국회의원 뽑는 총선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과제다. 아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1호(2020년 4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