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접대의 꽃이라 불리던 ‘위스키’가 뒷방 신세로 내몰렸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내놓기 바쁘게 팔려나가던 것도 옛말.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판매량이 뒷걸음질 쳤다. 달라진 음주문화가 위스키시장에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 위스키업체들은 사업 규모를 줄이고 판권을 매각하는 등 자구책에 나서고 있지만 회생 여부는 미지수다. 생사기로에 놓인 위스키. 무엇이 문제인가. (편집자주)


[MoneyS Report] ③ '흥망성쇠史' 위스키… 이제 끝인가 

국내 위스키시장은 한국 경제와 흥망을 같이 했다. 해방 이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유통이 시작된 위스키는 60~70년대 고위 공직자나 재벌가 등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후 8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과 90년대 초 주류 수입 개방을 거치며 위스키는 전성기를 맞았다. 인터내셔널 위스키가 쏟아져 들어왔고 일반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국내 위스키시장은 한국 경제와 흥망을 같이 했다. 해방 이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유통이 시작된 위스키는 60~70년대 고위 공직자나 재벌가 등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후 8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과 90년대 초 주류 수입 개방을 거치며 위스키는 전성기를 맞았다. 인터내셔널 위스키가 쏟아져 들어왔고 일반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한국 경제와 함께 급속도로 성장한 위스키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에 정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 IT(정보통신)·벤처 버블과 함께 되살아났다. 접대가 늘고 폭탄주가 대중적인 음주문화로 확산하면서 위스키 소비는 최고조에 달했다. 정점을 찍은 건 2008년. 이듬해부터는 10년 넘게 하락세다. 추락하는 위스키시장에 날개는 있을까.

위스키시장은 왜 망했나 

국내 위스키시장은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이제까지 경기가 좋을 때 같이 웃었고 불경기엔 함께 내리막을 걸었다. 위스키는 가격이 비싼 데다 주 판매처가 유흥주점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시기엔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오늘날 위스키의 인기가 시들한 이유다.

직격탄을 맞은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경기악화에 기업들이 접대비를 줄이면서 유흥업소를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여기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접대 문화가 위축됐고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술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다. 위스키는 룸살롱,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하는 만큼 2·3차 회식과 접대 실종으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음주문화 자체도 바뀌었다. ‘혼술’과 ‘홈술’(혼자 또는 집에서 술 마시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비교적 가벼운 맥주나 와인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특히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회식 대신 혼술을, 독한 술보다 일상에 지장이 없는 순한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위스키 판매량은 반 토막 났다. 위스키 소비가 최고점을 찍은 2008년 한해 동안 위스키는 284만 상자(500㎖ 18병 기준) 이상 출고됐다. 하지만 2018년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약 149만 상자로 절반가량 줄었다. 

올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판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흥주점이 한때 영업중지(집합금지 명령)에 들어갔고 면세점마저 임시휴업에 돌입하며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매출 70~80%가 빠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생존 위한 ‘몸부림’ 안 통했나 

국내 저도주 열풍을 이끈 골든블루 대표 제품들. /사진제공=골든블루

지난 10년간 생존을 위한 위스키업계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거나 위스키 원액 비율을 줄이는 식으로 스스로 몸값을 떨어뜨렸다. 국내 위스키시장에서 저도주 비중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 0.1%에 불과했던 저도 위스키 시장점유율은 2018년 51.6%를 기록, 처음으로 40도 이상 위스키(48.4%)를 뛰어넘었다. 

알코올 도수뿐 아니라 위스키 원액 비율도 낮췄다. 위스키 원액에 첨가물이나 향을 넣은 스피릿드링크류의 등장이다. 주세법상 위스키는 100% 원액을 사용해야만 ‘위스키’라는 정식 명칭으로 유통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타주류’에 속하지만 업계는 정식 위스키이길 포기하면서까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숙성연산을 하지 않은 무연산 제품도 대거 출시됐다. 위스키는 원액을 숙성한 시간에 따라 연산을 매긴다. 통상 숙성기간이 길수록 위스키 가격도 비싸진다. 이와 달리 무연산 위스키는 최소 3년 이상 숙성한 원액부터 수십가지를 블렌딩해 만들기 때문에 제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저도주, 무연산 위스키로 반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위스키 소비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업계는 결국 체질개선에 돌입했다. ‘조니워커’, ‘윈저’를 취급하는 디아지오는 오는 6월 국내 이천공장을 중단하기로 했고 앞서 페르노리카는 임페리얼 위스키 영업·판매권을 매각했다.
일본은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은 '하이볼'의 유행으로 시장이 되살아났다. /사진=뉴시스DB

취하는 ‘양주’에서 즐기는 ‘위스키’로 
국내 위스키업계가 주목하는 건 일본 위스키시장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장기간의 경기침체를 경험한 일본에선 2000년대 후반까지 위스키 판매량이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반등에 성공했다. 국제주류연구소(IWSR)에 따르면 일본의 위스키 판매량은 2008년 835만 상자에서 2017년 1780만 상자로 배로 늘었다.

일본 위스키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건 소비층이 확대되면서다.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하이볼’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가정용 위스키 소비 비중이 전체 50% 이상으로 증가했다. 독주라는 이유로 위스키를 기피하던 소비층에게 위스키를 즐기는 다른 방법을 제시해준 결과다. 

국내 업계도 위스키 대중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나이든 아저씨들이 비싼 술집에서 마시는 독한 술, 접대 문화의 상징인 ‘양폭’(양주+위스키)에서 누구나 가볍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 

업계는 젊은층이 위스키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용법 및 시음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개성 있는 신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층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젊은 소비자층을 잡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시장 침체에도 내리지 않던 출고가를 최근 들어 인하하기도 했다. 

변화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보다 한잔을 마시더라도 다양한 맛과 문화를 즐기려는 2030 세대 덕에 고급 위스키의 상징인 싱글몰트(한 증류소에서 100% 맥아로 만든 몰트위스키)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지난해 전체 위스키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6.2% 감소했지만 그중 싱글몰트시장은 4.7% 성장했다.

김경연 페르노리카 코리아 몰트 앤 럭셔리 마케팅 이사는 “품질 높은 제품에 기꺼이 투자하며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럭셔리 및 몰트 라인업 강화와 혁신적인 소비자 경험 활동으로 질적 성장을 꾀하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4호(2020년 5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