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순방 중인 박병석 국회의장이 24일 모스크바 하원 의사당에서 바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회 제공) 2021.5.24/뉴스1

(모스크바·프라하=뉴스1) 정연주 기자 = 박병석 국회의장은 30일 7박 9일간의 러시아·체코 공식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다. 박 의장은 '북한의 대화 테이블 복귀'란 안보 문제부터 '원전 수주'란 경제 현안까지 전면에 띄워 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의회 외교를 발휘했다.

박 의장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6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를, 27일부터 29일까지 체코 프라하를 방문해 정치권과 경제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회의장으로서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미국과 중국, 일본 중 박 의장이 처음이다.


북한과의 소통 채널이 다변화한 러시아에서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방점이 찍혔다.

박 의장은 얼마 전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만큼 북한이 대화테이블에 복귀하도록 러시아가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22일 모스크바 첫 일정으로 구세주성당 레드홀에서 키릴(Kirill)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와의 면담에선 "키릴 성하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진정되는대로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해 주신다면 남·북한 화해와 평화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국민 86% 이상이 신자일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종교다. 이에 키릴 총대주교는 "북한과 한국을 하나의 나라로 생각한다. 한국과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것을 꼭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24일 모스크바 하원 의사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을 만났다.

이어 볼로딘 의장에게 Δ유라시아 국회의장 회의에 북한 초청 Δ동북아 방역 공동체에 북한 참여 Δ남북 국회회담의 주선 등을 제안하며 "볼로딘 의장께서 이 세 가지 문제에 북한의 참여를 설득해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볼로딘 의장은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를 대화를 비롯한 외교수단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전히 취하고 있다"며 "말씀하신 남북 국회회담은 지지할 만하다.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북한의 참여 문제는 한미 간의 완전한 조율이 끝난 지금이 아주 적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북한에게 들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총선(9월) 이후 볼로딘 의장의 방한을 제안했고 볼로딘 의장은 "방문하겠다. (푸틴) 대통령께서도 한국 방문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뤄지면 러·한관계 발전에 큰 동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볼로딘 의장의 방한 후 대면 회담 등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관련 새로운 기술 개발과 대응 정책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박 의장은 러시아산 백신인 스푸트니크V와 관련해 "한국이 세계적인 백산 생산기지이기 때문에 기술 공동개발과 백신 배급 문제에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의장은 25일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을 모스크바 상원 의사당에서 만나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핵 문제는 남·북한 8000만명이 죽고 사는 문제라 당연히 한국 입장이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트비옌코 의장은 "만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지게 되면 무조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트비옌코 의장이 지난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거론하자 박 의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친분관계가 있으시니 마트비옌코 의장이 나서주시면 여러가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남북러 열차 시범운행 관련해서도 북한을 설득해달라"고 강조했다.

마트비옌코 의장이 한국 내 스푸트니크V 백신 긴급 사용 승인을 요청한 것에 대해선 최소 EMA의 허가가 있어야 긴급 사용 승인 검토에도 속도가 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동유럽 순방길에 나선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구세주성당 레드홀에서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의 면담하고 있다. (국회 제공) 2021.5.23/뉴스1

27일 체코로 이동한 박 의장은 곧바로 '원전 외교'에 착수했다. 체코가 원전 산업 구상에 한창인 가운데,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에 뛰어든 상태다.

박 의장은 이번 체코 방문에서 밀로시 제만 대통령에 이어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 등 국가 서열 1~4위 인사를 모두 만났다. 코로나19 이후 비(非)유럽연합(EU) 국가 고위급 인사 중 체코를 방문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이다.

27일 프라하 상원(콜로브라트 궁전)에서 밀로시 비스트르칠 체코 상원의장과 만나선 "한국을 원전 건설 최적의 파트너로 인정해준다면 체코와의 현지화·기술이전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40여년 간 24개 원전을 건설, 운영 중이며 현재 국내에서 4기, 해외 4기, 총 8기를 건설 중이다. 기술능력, 시공, 그리고 운영 능력 이 모든 면에서 저희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비스트르칠 의장은 "(원전 및 배터리 분야 등) 한국이 건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면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현지화를 이뤄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한국과의 협력 확대를 요청하는 한편 앞서 전기배터리 산업과 관련해서도 핵심 소재인 리튬이 체코에서 대량 생산된다는 점을 짚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프라하 외곽 라니성에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1시간 동안 경제부터 북한 현안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박 의장은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고 , 제만 대통령은 "북한에는 체코 대사관이 있다. 한국 측의 어떤 활동에 지원이 필요하다면 저희는 지원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제만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굉장히 바란다. 독일 통일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아시나. 모든 게 굉장히 급작스레 이뤄졌다.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북한에 대한 역할을 요청하는 한편 원전 의제도 재차 꺼냈다.

28일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원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에 바비쉬 총리는 "지대한 관심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화답했다.

박 의장은 체코에서 관심이 높은 '사이버 보안' 문제를 거론하며 "원전 완성에 이어 운영에 있어 사이버보안은 아주 절대적인 요소"라며 "아시다시피 우리는 남북대치 상황에서 사이버 보안능력에 국력을 집중해 왔다. 어느나라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카렐 하블리첵 산업통상교통장관 겸 부총리는 "수일 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무소에 사전 안전성 평가지를 전달할 계획이고, 이후 14개월 이내에 입찰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바비쉬 총리는 앞서 모두 발언에서 "오늘 오전에 내각회의를 했는데, 비(非) EU국가 6개국에 대한 관광활성화를 하기로 했고, 여기에 한국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밖에 바비쉬 총리는 한국의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정책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박 의장과 비스트르칠 의장은 전날 면담과 관련 인권과 안보, 국방 분야와 함께 교육·R&D, 경제·산업분야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체코는 디지털화정부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경험을 활용하고 자국내 교육 활성화를 위해 기업과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원전과 관련해선 "한국 측에서 두코바니 원전 입찰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봤는데 해당 지역구 의원이 답변하기를 한수원을 유망한 입찰자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비스트르칠 의장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직접 중재에 나설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 "전체주의 경험도 있어 다른 국가의 중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체코를 공식 방문 중인 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오후(현지시간) 프라하 인근 대통령 관저인 라니성에서 밀로시 제만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국회 제공) 2021.5.28/뉴스1

박 의장은 순방 기간 동안 러시아 내 독립유공자 후손과 러시아·체코 동포 및 기업인들과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한국 내 고려인 취업 문제 등에 대한 점검도 약속했다.

순방에 앞서 박 의장은 주요 부처의 의견을 청취하고 각국의 현안이 조기에 진척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내실 있는 순방에 방점을 찍은 박 의장의 계획대로 수차례의 회담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되기도 했다. 체코 회담에선 박 의장에 대해 '진지하다'는 내부 정보보고와 달리, 박 의장이 예상치 못한 유머를 던지며 분위기를 이끌자 종종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박 의장은 이번 방문에서 얻은 성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실행안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순방에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김병기·강훈식, 국민의힘 류성걸, 국민의당 최연숙,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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