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별세한 고 이어령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사진은 이 전 장관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 하는 모습. /사진=뉴스1
문화체육관광부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영결식을 엄수했다. 문체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문체부장으로 장례를 거행했다.

고인은 지난달 26일 별세해 5일 동안의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날 오전 8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발인했다. 운구차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거쳐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마련된 '광화벽화'에는 고인이 생전 남긴 말과 그를 추모하는 문구가 흘러 나왔다. 문화계 후배들은 "애초에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그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강국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유인촌·정병국·박양우·도종환 등 문체부 전임 장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 공공기관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2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근배 시인과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가 진행됐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고 이어령 장관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어령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근배 시인은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운 빛의 붓,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밝히소서'라는 제목의 헌시를 올렸다. 이씨는 "선생님은 문단에 첫걸을 떼는 철부지였던 저를 거두어주셨다"고 회상하며 "선생님은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문화 대역사를 이루셨고,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화영 교수는 "긴 세월 동행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정신의 도전을 선생님께 배웠다"며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 삶을 진정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메멘토 모리.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고 고인을 추도했다.

조사와 추도사 이후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는 고인이 이룬 방대한 업적을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는 고인의 생전 당부, 그리고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와 같은 고인이 별세하기 전 남긴 말이 담겼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진행하고 고인이 문화부 장관 시절 일군 대표적인 성과인 한예종의 교수와 학생들이 추모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의 '엘레지'를 연주했다. 국악 공연으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암 투병 끝에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인 고인은 지난 1933년 태어나 문학평론가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약했다. 지난 1956년 문단의 권위의식을 질타하고 문학의 저항적 기능을 역설하는 '우상의 파괴'로 문단에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삶과 죽음, 한국인의 정체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천착했던 고인은 2000년대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정서를 담은 '디지로그' 개념을 제시해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 


이밖에 고인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조선총독부 철거 등 경복궁 복원계획 수립 등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