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는 한편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롯데지주


◆기사 게재 순서
①재계 순위 하락… 신동빈의 눈에 비친 롯데
②신사업 챙기는 신동빈… 유동성 위기 대응·과감한 투자 '투트랙'
③이마트·쿠팡에 밀린 롯데쇼핑… 순혈주의 손댄 이유 보니


롯데그룹의 재무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롯데그룹에 대한 신용등급 모니터링을 일제히 강화하자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으로 사태 진화에 나선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는 한편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 진정됐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부동산 시장 경색으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조성과 채권 발행이 어려워졌고 롯데건설도 PF 우발채무가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 말 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신평사)는 "자금난이 그룹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며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지주 등 계열사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신용등급 전망 하향은 향후 6개월~1년간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나 업황 개선 추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롯데건설→롯데케미칼→롯데그룹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따라 롯데건설발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론을 의식한 듯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이어졌고 올해 3월 말 기준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연대보증, 자금보충, 채무인수 합산) 규모는 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11월 말 고점(5조8000억원) 대비 소폭 감소했다. 다만 개별 건설업체 중 PF 우발채무가 가장 큰 수준이다.

롯데건설에서 촉발된 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다소 진정된 분위기지만 국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아직 완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단기 유동성 리스크는 완화됐지만 여전히 전체 PF 우발채무의 77.5%가 미착공 사업으로 구성돼 있어 사업 진행 경과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사업지 분포, 우선수익권 설정 등을 고려하면 프로젝트들의 사업성은 양호하지만 부동산 경기 하강 국면에서 착공 전환, 기성에 따른 대금 회수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사업성 저하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가시적인 사업성과를 통한 재무안정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사업장 구조조정 등을 통한 미착공사업장의 선별적 착공전환 및 프로젝트의 분양 성과 등이 향후 롯데건설 신용도의 결정 요인"이라고 짚었다.


롯데건설로 시작해 그룹 위기론까지 나오자 롯데는 그룹사 역량을 총동원해 유동성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룹 압박의 시초가 된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지주의 손자회사인 롯데건설에서 단기 운영자금이 부족해지자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홈쇼핑, 롯데정밀화학 등 계열사가 총동원돼 1조원대의 자금을 지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사태 수습을 위해 개인 사재까지 털었다. 신 회장은 2022년 11월 롯데건설 보통주 9772주를 11억7254만원에 취득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신 회장의 책임경영 의지로 해석했다. 신 회장은 롯데건설의 대표이사를 '재무통' 박현철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으로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로 초강수를 뒀다.

고비 넘긴 롯데… 신사업 확대 속도

롯데는 그룹 압박의 시초가 된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그룹사 지원 현황. /그래픽=강지호 기자


롯데건설은 일단 커다란 위기에서 한숨 돌린 모습이다. 자금 확보를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조기 상환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롯데홈쇼핑과 롯데정밀화학에서 대여한 4000억원을 조기 상환했고 올해 1월 롯데케미칼로부터 대여한 5000억원도 조기 상환해 그룹에서 빌린 자금을 모두 지불했다.

일부 계열사의 신용등급 '부정적' 전망에도 롯데그룹은 올해 상반기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올 들어 6월까지 회사채 발행금액은 3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발행금액(5조원)의 72%를 상반기에 조달하는 등 짧은 기간에 자금을 확보했다.

그룹 차원의 발 빠른 대응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한숨 돌린 신 회장은 신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인수합병(M&A)으로 외형을 키운 대표적 기업이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석유화학과 렌터카 사업을 포함해 M&A 기업은 35개에 달한다.

보수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롯데그룹이 지난 4월 대형은행들과 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협약을 맺는 행보를 보였다. 협약에는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바이오로직스 총 6개사가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앞으로 ▲2차 전지소재 ▲수소·암모니아 ▲리사이클·탄소저감 ▲바이오 등 미래 핵심사업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향후 신사업 투자 계획에 문제가 없도록 은행과 미리 손잡아 시장에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재계에선 롯데가 재무적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 확보와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그룹 전반에 불거진 유동성 위기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룹의 이 같은 행보가 '신용등급 개선'이라는 현안을 풀어줄지도 관심사다. 신평사 3사는 정기 신용평가를 진행 중이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신용등급 '부정적' 전망이 많지만 올해 정기평가에서 개선될 여지도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달 들어 롯데물산,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롯데하이마트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