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 관세정책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5%의 '글로벌 관세'를 새로 부과하는 등 '플랜B'를 가동했고, 미 관세당국의 후속 조치도 빨라지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범위가 확대되면 우리도 비관세장벽이나 미국 기업 차별을 고리로 보복관세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주력 수출 품목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나하나 한국경제에 큰 역풍을 불러 올 수 있는 사안이다.


통상 분야 불확실성이 커지자 우리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비공개 당정청 회의와 '민관합동대책회의',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국회는 별도로 상임위 차원에서 관세 대책을 따졌다. 새로운 변수가 돌출한 만큼 정부와 기업, 국회가 기민하게 머리를 맞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다만 관세 협상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차가 여전히 큰 만큼 이를 좁히려는 노력도 포기해선 안된다. 당장 24일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가 특별법 공청회를 연다. 정쟁을 하더라도 국익 앞에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회가 후속 입법에 나서지 않아 관세를 더 올리겠다는 등의 트럼프 압박이 반복돼선 안된다.

한미 관세협상은 다른 나라보다 더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일이다. 단순히 투자 금액과 관세율만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 협상에 따르면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안보 이슈가 통상 문제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최근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안보 상황을 흔들고 있다. 안보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미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관세 환급을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다만 기존 합의의 틀을 지키면서도 추가 협상을 통해 지켜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미국이 무역법 301조에 따라 보복 관세를 때리지 않도록 잘 방어해야 한다. 최근 쿠팡 사례에서도 봤듯이 일방적 주장이 로비를 통해 미국 정부·의회에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 무역 보복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적극 협상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법, 디지털 규제, 구글 고정밀지도 반출 등 비관세 장벽에선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실리적 접근이 요구된다. 품목별 관세율이 올라가지 않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협상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미국 내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24일 국정 연설, 다음달 발간될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정보 수집을 더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 맞는 소통을 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관세를 부과받거나 또다른 주력 산업으로 불똥이 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발언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없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재연돼선 안된다. 통상과 안보의 복합적 혼돈 국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