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금융위워장-저축은행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융위원회가 금융권의 개인 연체채권 관리 관행을 손질한다. 회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온 관행에서 벗어나 연체자의 신속한 재기와 선제적 보호를 중심에 두겠다는 구상이다. 장기 연체자를 양산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온 소멸시효 연장 관행도 개선 대상에 포함됐다.


금융위는 26일 신용회복위원회 광진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포용적 금융 대전환' 2차 회의를 열고 '연체자 보호와 신속한 재기 지원을 위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와 유관기관, 금융업권 협회, 연체채권 관리 관련 민간 전문가들도 참석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개인이 가늠할 수 없는 기술과 경제구조의 빠른 변화로 성실하게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도 불가피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가가 부여한 공적 권한 안에서 운영되고 사회 전체의 신뢰시스템 위에서 이익을 내고 있는 금융회사의 사회적 역할 강화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복위(신용회복위원회) 워크아웃, 법원 개인회생 제도, 새도약기금 등 연체채무자의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을 위한 그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며 "현재 부실 발생 이후 사후구제 중심 채무조정 지원제도에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어려움에 처한 차주도 제도권 금융 내에서 재기와 극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선제적·예방적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하며, 이를 위해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고객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억원 "인간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

금융위는 이를 위해 세 가지 축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연체 초기 단계에서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을 활성화한다. 지난해(2025년) 10월 시행된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라 도입된 자체 채무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한의 이익 상실 전 채무조정요청권 안내를 의무화하고 업권별 우수사례를 반영한 내부기준 모범사례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금융회사별 채무조정 실적에 대한 사후평가 시스템을 마련하고 자체 채무조정 과정에서 원금 감면시 감면 부분을 손실로 인정해 금융회사의 자체 채무조정 유인을 강화한다.

원채권 금융회사의 고객보호책임도 강화한다. 채권매각 시에도 원채권 금융회사에 고객보호책임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채권을 매각하는 동시에 고객 보호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해왔던 것을 더 이상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채권 양도인에게도 양수인의 불법행위 여부를 점검하고 불법행위를 발견하면 감독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신복위 신속 채무조정중인 채권의 매각을 제한해 매각에 따른 신용평점 하락 등 채무자 불이익을 방지하는 내용도 도입된다.


아울러 원채권 금융기관이 채권을 매각할 때 매각 계약서에 재매각 가능 여부 및 재매각 가능 기간·기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장기·과잉 추심 고통을 최소화한다. 연체채권 매각시 매각 내용을 감독당국에 보고하고 의무적으로 대외에 공시하도록 하는 등 채권매각에 대한 감독당국의 관리도 강화한다.

여기에 금융회사의 소멸시효 연장 관행으로 인해 장기 연체자가 양산되는 구조도 개선한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연체채권에 대해 법인세법상 비용처리를 허용해 금융회사의 시효완성 유인을 강화한다. 다만 금융권 건전성 관리 부담을 감안해 은행·보험은 5000만원 이하, 저축은행·상호·여전은 3000만원 이하 연체채권(계좌수 기준 90% 이상)에 우선 적용하되, 제도 안착 추이를 지켜보며 추후 적용 기준 상향을 검토한다.

또한 소멸시효 완성 사실 통지 의무를 부여하고, 소멸시효 관리 내부 기준에 따라 연장 여부를 판단하도록 의무화해 채무자 상환 가능성과 무관하게 시효를 관행적으로 늘려온 '원칙적 연장·예외적 완성' 구조를 '원칙적 완성·예외적 연장'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아울러 법무부와 함께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금융회사에만 인정되던 지급명령 공시송달 특례를 전면 폐지하는 등, 소멸시효 연장을 목적으로 한 기계적 지급명령 신청(남소)을 차단하는 방안을 신속히 추진한다.

현행 '민사소송법'상 독촉절차(지급명령)에서는 주소불명 채무자에 대한 공시송달이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소송촉진법'에 따른 금융기관이 업무·사업으로 취득·행사하는 대여금, 구상금, 보증금 및 그 양수금의 경우 예외적으로 지급명령 절차에서도 공시송달이 허용된다.

하지만 현행 특례제도가 상환능력이 희박한 채무자에게까지 소멸시효 연장 목적 등으로 기계적인 지급명령 신청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자 금융위는 남소방지를 도모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신속 도입한다.

이억원 위원장은 "인간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한 번의 경제적 실패가 영원한 예속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미국 파산법의 철학적 근간을 소개하며, "대출은 채무자의 상환약속일뿐 아니라, 채권자의 적절한 심사와 관리가 결합된 미래를 향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공동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실패의 비용도 함께 나누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번 방안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금융권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