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본격 착수했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26년 2월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 실험 '프로젝트 한강'이 2단계에 접어들었다.


기존 모바일·인터넷뱅킹이 단순한 계좌 잔액을 이동시키는 데 그쳤다면, 이번 실험의 핵심은 사용처를 제한하고 거래 흐름까지 추적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 보조금 지급에도 처음 적용되면서, 사업자 대출 등 용처가 정해진 자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기술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제도와 운영 역량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뱅킹 시스템은 단순 잔액 변경, 한강은 '프로그램 가능한 돈' 활용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프로젝트 한강'은 금융 소비자가 별도의 디지털 지갑을 통해 예금 토큰을 사용해 결제·송금을 하는 시범 사업이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뱅킹 시스템과의 구조적 차이다. 현재 모바일·인터넷뱅킹이 은행 중앙 서버에서 잔액을 변경하는 방식이라면, 한강 프로젝트는 예금을 '토큰' 형태로 발행해 블록체인 기반으로 직접 전송한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이 구현된다. 예컨대 특정 보조금은 지정된 업종에서만 사용되도록 설정할 수 있고, 사용 내역도 자동 기록된다. 단순 이체 기능에 그쳤던 기존 금융과 달리, 자금의 용도 자체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미 다수의 코인이나 토큰 등 블록체인 기반 DeFi(탈중앙화금융) 시스템에서 구동되는 스마트 컨트랙트(스마트 계약)가 이같은 블록체인 및 토큰의 속성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강 1단계가 기술 검증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강 2단계는 실제 활용처를 확대하는 데에 방점을 뒀다. 앞서 1단계에선 서울 청년문화패스, 부산 신라대 장학금, 대구 도서관 바우처 등 3종의 디지털 바우처가 발행됐다. 이번에는 국고금 집행에 예금 토큰을 활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대표 사례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재정경제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한국은행은 오는 24일 업무협약(MOU)을 맺고 총 3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디지털 화폐 기반 예금토큰으로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사업자가 주차장이나 대형마트 등에 충전시설을 설치하면, 해당 용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꼬리표 붙은 돈'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대통령 지적한 '꼼수 대출', 토큰화된 예금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 같은 구조는 그동안 반복돼 온 자금 유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사업자 대출의 '꼼수 활용'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고 보조금이나 정책 자금을 유용하는 것은 정책 집행 효과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구멍으로 지목돼 왔는데 이같은 구멍을 토큰화된 예금 인프라로 막을 수 있을지 주목을 받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사업자 대출을 가장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행위에 대해 "사기죄로 형사처벌될 수 있다"며 전수조사와 대출금 회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금융감독원 점검에서도 개인사업자 대출의 용도 외 유용 사례가 100건 이상 적발되는 등, 제도적 허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 같은 '꼼수 대출'은 저금리 시기 더욱 기승을 부렸다.

"투명성 제고에 대한 기대, 사생활 침해 우려 병존"

이 때문에 예금 토큰 기반 디지털 화폐는 대출 단계부터 사용처를 제한하고, 사후 추적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거론된다. 자금이 부동산 매입 등으로 전용될 경우 거래 흐름을 역추적할 수 있어 구조적으로 '용도 외 유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기술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재우 한성대 블록체인연구소 소장은 "예금토큰은 특정 용도 외 사용을 차단하고 거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구조"라면서도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도 일정 수준의 추적은 가능하며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분석하고 활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조 소장은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이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내부 통제가 미흡할 경우 정보 오남용 가능성도 있다"며 "투명성 제고에 대한 기대감만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차 인프라처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분야는 괜찮지만, 취약계층 보조금 등으로 확대될 경우 지원 내역 자체가 개인의 경제 상황을 드러내는 '낙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