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리스크 장기화로 인해 민관 금융이 합동 지원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시내 마련된 주요 은행 ATM 모습. /사진=뉴시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정부와 금융권이 유동성 공급과 만기 연장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총 70조원대에 달하는 자금 공급과 함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병행되며 실물경제 충격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을 병행하는 '투트랙' 지원 체계도 본격 가동된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2일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경계'(3단계)로 격상하고 에너지 수급 관리에 돌입했다. 차량 2부제 자율 시행, 대중교통 이용 확대 등 수요 절감 조치와 함께 대체 물량 확보, 비축유 활용 등 공급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

금융지원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은 사태 직후 신규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지원 규모를 20조3000억원에서 24조3000억원으로 늘렸다. 기존 대출에 대해서도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 중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정책금융 신규 프로그램을 26조8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금융권도 대규모 지원에 나서며 위기 대응에 힘을 보태고 있다. 5대 금융지주와 은행권은 53조원+α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고 만기 연장·상환 유예 등 유동성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중동 사태 이후 3월 한 달 동안 정책·민간 금융권이 공급한 신규 자금과 만기 연장 규모는 10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민간 금융권은 업종별·기업별 맞춤형 지원과 함께 그룹 차원의 전방위 대응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총 18조3000억원 규모의 '중동 대응 비상경영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유동성 지원 17조5000억원과 수출입 금융 8000억원을 공급한다. 약 4만개 기업을 집중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신규 대출 13조원 확대와 기존 대출 4조5000억원에 대한 금리 인하·상환 유예를 통해 자금 부담을 완화한다. 또한 신용장 한도 확대, 긴급 운영자금 지원 등으로 수출입 기업의 결제 안정성을 높이고, '환율 상담 SOS' 전담반을 통해 환리스크 관리도 지원한다.


KB국민은행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협력해 6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정책금융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물류비 상승과 계약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금리 우대와 보증 지원을 제공해 자금 애로 해소를 지원한다.

주요 금융권, 에너지 위기 대응 수위 높여

자원안보 위기경보 3단계 격상에 따라 공영주차장 차량 5부제가 시행된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영주차장에 관련 안내문. /사진=뉴스1


여기에 주요 금융지주들도 에너지 위기 대응과 금융 지원을 병행하며 그룹 차원의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KB금융은 차량 2부제 자율 시행과 함께 사옥 조명 소등 등 에너지 절감 조치를 확대했다. 신한금융은 차량 5부제와 건물 에너지 효율화, 자원순환 캠페인 등을 통해 에너지 절약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차량 5부제 시행과 사옥 에너지 사용 최소화 조치를 병행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농협금융도 차량 2부제 자율 시행 등 에너지 절감 대책을 확대하며 국가적 위기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

금융지주 차원의 생활 밀착형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카드·캐피탈·보험 등 계열사를 통해 유류비 할인, 상용차 대출 상환 유예, 보험료 납입 유예 등 개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확대했다. 이는 고유가·고금리 환경에서 민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현장 점검과 업종별 지원을 지속 확대할 방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석유화학·정유업계 및 금융권과 간담회를 열고 "중동 상황으로 산업과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금융지원 체계를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를 시작으로 주요 산업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회의를 통해 현장 애로를 점검하고 정책에 신속히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피해 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신용보증기금의 P-CBO(채권담보부증권) 차환 조건도 완화된다. 이에 따라 향후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약 9000억원 규모 유동화증권의 상환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P-CBO는 낮은 신용등급 등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기업들의 회사채를 한데 묶어(Pooling) 신용보증기금이 선순위증권에 대해 전액 지급보증함으로써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지원·시장안정 제도다.

주력 산업 안정화 조치도 병행된다. 한국석유공사의 유동성 확충을 위한 정책금융기관 간 협업이 논의되고 있다. 석유화학·반도체·자동차 등 6대 산업 구조개선을 지원하는 1조원 규모 기업구조혁신펀드도 이달 중 조성될 예정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가 얼마나 장기화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실제 피해가 확인된 기업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금융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