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금융제재 줄패소 관행 바뀌나...'ELS 1.4조 과징금' 재검토
정례회의 상정 뒤 이례적 보완 요구
법령·법리 기준 다시 점검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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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제재안이 금융위원회 문턱에서 다시 멈춰 섰다. 금융감독원이 올린 조 단위 과징금 안건이 정례회의까지 올라갔지만 금융위는 최종 의결 대신 조치안 보완을 요구했다. 대형 제재 안건이 정례회의 단계에서 다시 금감원으로 돌아간 것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기준 위반 사건 이후 처음이다.
이번 사안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처음 적용될 수 있 대규모 조 단위 과징금 사례인 만큼 금융위로서도 법리와 양정 기준을 신중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금융권에 얼마의 과징금을 물릴지의 문제가 아닌 향후 불완전판매 제재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Return: 정례회의 문턱서 다시 금감원으로]
금융위는 지난 13일 정례회의에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제재안을 상정했지만 최종 의결하지 않고 금감원에 조치안 보완을 요청했다. 금융위 소위원회 단계에서 안건을 보완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례회의에 정식 상정된 안건이 다시 금감원으로 넘어간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홍콩 ELS 사태는 2023년 홍콩 H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상품 손실이 커지며 촉발됐다. 은행권 판매 규모만 약 16조원에 달한 데다 원금 손실이 현실화되면서 파장이 컸다. 고령층과 안정적 투자 성향 고객에게 고위험 파생상품이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됐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며 단순 투자 손실을 넘어 금융소비자 보호 문제로 확산됐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다만 금감원 제재심 결정은 최종 처분이 아니며 금융위 의결을 거쳐야 법적 효력이 생긴다. 금융위가 안건을 넘겨받은 지 석 달 넘게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한 배경에도 과징금 수위와 산정 논리를 둘러싼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tandard: 첫 조 단위 과징금이 만들 기준표]
금감원 내부에서 거론된 과징금 규모는 당초 약 4조원 수준이었지만, 은행권의 자율배상과 사전 예방 노력 등이 반영되며 사전 통보액은 1조9000억원대로 낮아졌다. 이후 제재심을 거치며 다시 1조4000억원 수준까지 줄었다.쟁점은 단순히 과징금을 어디까지 낮출 것이냐에 그치지 않는다. 불완전판매 관련 판매액을 어떻게 산정할지, 금융사가 실제로 얻은 이익을 어디까지 볼지, 자율배상에 따른 감경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지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자율배상을 둘러싼 금융위와 금감원의 입장차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은 이미 대규모 자율배상에 나선 만큼 이를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사의 피해 구제 노력을 과징금 감경 사유로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는 소비자 피해 회복 정도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최대 75%까지 감면할 수 있다.
문제는 감경 폭이다. 은행권이 분쟁조정 기준에 따라 전체 피해자의 90% 이상에게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자율배상을 마친 점은 분명한 참작 요인이다. 다만 자율배상을 이유로 과징금 수위를 크게 낮출 경우 불완전판매에 대한 제재 실효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은행권의 노력과 책임을 어디까지 분리해 볼 것인지를 두고 당국 내부에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건은 단순히 금융사에 돈을 때리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제재 기준과 검사 방식, 감경 논리의 합리성을 함께 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조 단위 과징금 사례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egal: 설명의무·부당권유 중복 적용이 핵심 쟁점]
금융위가 조치안 보완을 요구한 배경에는 과징금 산정 방식과 법리 적용을 둘러싼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LS 판매 과정에서 문제 된 설명의무 위반과 부당권유 금지 위반을 각각 별도 제재 사유로 적용할지, 하나의 판매 행위에서 비롯된 위반으로 묶어 볼지가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설명의무는 금융사가 상품 구조와 손실 가능성 등 투자 위험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리도록 한 규정이다. 부당권유 금지는 소비자가 상품을 오인하도록 하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특정 상품이 유리하다고 권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원칙이다. 두 위반을 별도로 적용하면 과징금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하나의 법리로 정리하면 중복 산정 여지가 줄어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행정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흐름도 금융위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제재 불복 소송 등에서 당국의 제재 논리가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한 바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검사·제재 단계에서 높은 수위의 조치안을 올리고 금융위가 최종 의결 과정에서 이를 낮추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흐름이 반복될 경우 제재 기준의 일관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Delay: 감경 가능성 열렸지만 결론은 더 멀어져]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가 법리 보완을 계기로 과징금 규모와 제재 수위를 다시 조정할 여지를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법리 보완 요구지만 은행권의 자율배상과 충당금 적립, 향후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최종 제재 수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은행권이 생산적·포용적 금융 정책에 동참하면서 자본 여력이 줄어드는 상황도 변수로 거론된다. 조 단위 과징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금융지원 여력 위축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데다 은행들이 불복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의 이번 보완 요구를 향후 법정 공방까지 염두에 두고 제재 논리와 산정 근거를 촘촘히 다지려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은행들은 금융위의 조치안 보완 요구를 일단 과징금 감경 가능성이 열린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은행들은 ELS 사태에 대한 책임과 투자자 배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조 단위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단순 제재 비용을 넘어 금융지원 여력과 건전성 관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소명해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제재안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 만큼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자율배상과 충당금 적립 등 그간의 조치가 추가로 반영될 가능성이 생긴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ELS 관련 비용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왔다. 판매액이 가장 많았던 KB국민은행은 지난해 관련 충당부채로 3330억원을 반영했고, 올해 1분기에도 980억원을 추가 반영했다.
다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제재안이 다시 금감원으로 넘어가면서 최종 결론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됐다. 금감원이 수정안을 마련해 금융위에 다시 올리고, 금융위가 이를 재검토하는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과징금 규모가 어느 방향으로 조정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재안이 다시 보완 절차에 들어가면서 금융위의 최종 결론은 6·3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조치안이 보완되는 대로 신속하고 면밀하게 검토해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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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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