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 확대, 규제 완화 아닌 '자본 흐름 설계'가 핵심"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와 생산적 금융 세미나
현행 규제, '안전 자산 선호' 강화 부추겨
이예빈 기자, 황다희 인턴기자
공유하기
부동산에 쏠린 은행권 자금을 첨단·미래 산업으로 유도하려는 정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해법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자본규제의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 생산적 금융으로 자금 흐름을 바꾸는 데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와 생산적 금융' 세미나에서는 은행의 본연 기능인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실물경제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규제 방향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강유석 딜로이트 안진 전무, 배창욱 하나은행 리스크관리그룹장, 신장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 정문영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 황준하 금융감독원 은행리스크감독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은행권 자금을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적 부문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성장률과 장기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자금이 특정 부문으로 급격히 이동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효율성과 안정성 간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홍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축사를 통해 "최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기업 자금조달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권 자금이 부동산에 편중되지 않고 생산적 금융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지난 4월 발표한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은 단순히 규제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정교하게 측정하고 확보된 자금 여력을 실물경제로 전환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논의의 핵심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자본이 어디로 흐르도록 설계돼 있는가'에 맞춰졌다. 윤여준 PwC컨설팅 상무는 "생산적 금융 확대는 자본규제 수준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규제 운영 체계의 정합성을 높이고 자본 배분 구조를 다변화하는 문제"라며 "국내 은행지주들이 충분한 자본 여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 구조가 자금 흐름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전성 규제가 생산적 금융을 제약한다는 인식에도 선을 그었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전성 규제는 단기적으로 은행 영업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시스템 안정성과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실제로 규제 수준이 더 높은 미국 은행들이 유럽보다 높은 경쟁력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 규제 체계가 결과적으로 안전 자산 선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인 바젤Ⅲ 최종안에서 위험가중자산을 산정하는 기본 방식인 '표준방법' 적용이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내부모형 대신 규정된 위험가중치를 따르도록 유도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위험가중치가 낮은 주택담보대출 등 자산으로 쏠림이 심화되고,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이나 지분투자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 투자에는 최대 400%의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되고, 신용등급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위험가중치가 부과되면서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바젤Ⅲ 도입 과정에서 표준방법 기준으로 산출한 위험가중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적용하도록 하는 '하한(플로어)' 규제가 상향되면서 BIS 비율에 하락 압력을 가하고, 결과적으로 은행의 투자 여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향후 스트레스완충자본 등 추가 규제가 도입될 경우 자본 활용 여지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지주 체제 역시 자본 운용의 제약 요인으로 언급됐다. 증권·보험·카드 등 자회사별로 서로 다른 규제를 동시에 적용받는 구조로 인해 그룹 차원의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비은행 계열사도 자체적인 자본 여력을 바탕으로 기업금융이나 투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책 방향으로는 자본규제의 유인 체계를 생산적 금융 중심으로 재정비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비상장 주식이나 정책목적 펀드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한편, 주택 등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해서는 자본 부담을 높여 자금 흐름을 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사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은 중소기업(SME)과 인프라 투자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낮춰 적용하는 '서포팅 팩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과 싱가포르 역시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체계를 유연하게 운용 중이다.
윤여준 PwC컨설팅 상무는 "규제 합리화 역시 중요하지만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한다"며 "생산적 금융 확대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자본 흐름을 구조적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이예빈 기자
안녕하세요. 이예빈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