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차주를 둘러싼 대출 여건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 은행권이 대출 한도를 줄이며 문턱을 높인 데다,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까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신규 차입을 늘리기보다 기존 대출의 금리와 상환 구조를 재점검하는 '대출 리밸런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새 8조3000억원 증가했다. 5월 9조3000억원보다 증가폭은 줄었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이 4조5000억원 늘었고, 신용대출 등을 포함한 기타대출도 3조7000억원 증가했다.
표=금융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도 관리 고삐를 죄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 상황과 자율관리 조치 등을 점검했다. 특히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 증가세에 대응해 금융회사들이 차주별 상황에 맞는 관리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은행들도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였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고 비규제지역까지 자체 한도 관리 대상에 포함했다. 신한은행도 같은 날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신규 가입을 한시적으로 제한했다. 앞서 국민·NH농협·하나은행 등도 유사한 조치를 시행했다.


MCI와 MCG 가입이 제한되면 주담대 한도를 산정할 때 담보가액에서 소액임차보증금만큼을 제외하게 된다. 같은 집을 담보로 맡기더라도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은행들이 대출 총량을 직접 조이는 데 더해 차주별 대출 가능 금액까지 낮추며 관리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변동성 이중 부담…위험한 빚부터 덜어내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는 만큼 차주들도 빚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금리·고위험 대출부터 덜어내고, 보유 대출은 금리 유형과 상환 일정, 대환 비용 등을 따져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빚으로는 투자 목적의 레버리지가 꼽힌다. 최근 국내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미수거래와 주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을 활용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에 빚을 내 투자하면 이자 비용과 자산 가격 변동 위험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 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레버리지의 비용이 구조적으로 비싸지는 국면"이라며 "차주는 자신의 대출 구조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수거래는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반대매매로 이어져 원치 않는 시점에 손실을 확정할 수 있다. 주식담보대출 역시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 추가 담보를 요구받거나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신용대출은 일반 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은 만큼 주가 상승분이 이자 비용을 넘지 못하면 투자 수익을 고스란히 깎아먹는다.


고금리 부채와 자산가격 변동 위험을 동시에 안고 가면 시장 조정 시 이자 부담과 투자 손실이라는 이중 충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수거래나 주식담보대출·신용대출을 통한 투자를 멈추거나 줄이고 여유자금 범위 안에서 투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투자 목적의 빚을 덜어냈다면 다음은 보유한 대출 전체를 한꺼번에 펼쳐놓고 점검할 차례다. 변동금리 비중과 거치기간 종료 시점, 중도상환수수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여력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특히 변동금리 주담대를 보유한 차주라면 고정금리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향후 금리가 추가로 오를 경우 변동금리 차주의 이자 부담도 뒤따라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금리가 오른다는 전망만으로 무조건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박 지점장은 "현재 고정금리에 향후 인상분이 이미 반영돼 있을 수 있다"며 "남은 만기와 예상되는 금리 인상 폭을 함께 계산해 전환에 따른 실익을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치기간 종료를 앞둔 차주도 월 상환액 변화를 미리 계산해야 한다. 이자만 내던 거치기간이 끝나 원리금 상환으로 넘어가면 월 상환 부담이 한꺼번에 커진다.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겹칠 경우 가계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 만기 연장이나 상환 방식 조정이 가능한지 사전에 은행과 상담해 상환 부담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출 갈아타기 역시 금리 숫자만 보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낮은 금리 상품으로 옮겼을 때 줄어드는 이자와 중도상환수수료 등 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함께 비교해 실제 절감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여윳돈이 생겼을 때는 대출 원금의 크기보다 금리를 기준으로 상환 순서를 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택 구입 과정에서 주담대와 신용대출을 함께 받은 차주라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부터 줄여 전체 이자 부담을 낮추는 식이다.

추가 대출 계획이 있다면 DSR 여력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은행이 가계대출 관리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는 현재 가능한 대출 한도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추가 대출이나 대출 재구조화 계획이 있다면 현재 DSR 여력과 규제 변경 일정부터 살펴야 한다.

결국 하반기 차주의 대출 전략은 '어디서 더 빌릴지'보다 '이미 빌린 돈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위험이 큰 빚부터 덜어내고 남은 대출은 금리와 상환 구조에 맞춰 다시 배열하는 식이다.

박 지점장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오른 만큼 벌었다는 마음보다 빌린 돈의 값이 얼마나 무거워지고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며 "레버리지 비용이 비싸지는 시기에는 대출 역시 리밸런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