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측인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원회는 시행사 측이 보전해주겠다고 한 4개월치의 영업보상금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며 해당 점포의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까지 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권리금은 일괄적으로 산정할 수 없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시행사 측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했다. 특히 세입자들은 큰길 건너에 있는 기업은행 앞에서까지 집회를 갖기도 했다.
류승희 기자
그렇게 투쟁이 시작된지 5개월. 세입자들도,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도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기업은행 역시 이번 일로 거론되는 것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중구청의 주재 하에 물밑 협상이 계속돼 왔다. 그리고 끝날 줄 모르던 투쟁도 9월7일 장장 8시간에 걸친 협의 끝에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시행사 측은 물리적인 마찰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에 대한 병원 치료비와 위로금 등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상당부분 세입자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용산'사태까지 불거질 뻔하던 명동 3구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실질적 투자자 기업은행 '안도'
명동 3구역 사태로 곤혹을 치렀던 곳 중 한 곳은 기업은행이었다. 상가대책위는 명동 3구역 안은 물론 길 건너편에 위치한 기업은행 앞에도 은행의 신뢰도에 반하는 문구들을 내걸었다. 은행을 향해 장송곡을 틀기도 했다.
이들이 기업은행 앞까지 진출한 이유는 기업은행이 명동 3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주주인 'KTB컨피던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31호'의 주요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투자자인 기업은행이 막대한 개발차익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세입자들의 이익을 보전하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기업은행이 투자한 이 펀드는 사업이 완료되면 시행사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차익을 실현하는 구조다. 이 사업의 실현 여부에 따라 기업은행의 이익이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기업은행이 참여한 이 펀드가 투자한 명동 3구역은 세입자와 시행사 간의 보상금 문제로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법원이 명도집행을 내린 지난 4월8일부터 명동 3구역 세입자들은 카페마리 일대의 지역을 점거한 채 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세입자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5개월동안 침묵했다. 세입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투자자의 책임이 아닌 시행사 측이 나서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민감한 부분이어서 답변이 곤란하다"면서 "은행은 재무적인 투자자일 뿐 법적으로 보상은 시행자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으로서는 그동안 금전적인 손실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은행 이미지 추락의 이중고를 겪어야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민원에 약하다보니 빚어지는 피해가 많다"고 전했다.
시행사와 세입자 간의 타결이 극적으로 이뤄지자 기업은행은 다시 안도하는 표정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재개발지역의 착공 지연은 항상 있던 일이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세입자와의 문제가 잘 해결돼 투자 자금만 회수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이 사업을 통해 지어지는 지하 6층 지상 25층 규모의 업무용 빌딩을 매입해 사용할지, 매각해서 이익을 실현할 지 미정인 상태다.
◇ 중구청 중재 좋은 선례로
5개월 간의 지루한 싸움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데는 중구청의 노력이 있었다. 중구청은 32차례나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와 시행사 측간의 대화 자리를 주선했다.
명동 3구역은 수익성이 좋은 입지인 만큼, 법이 지정한 4개월치의 영업보상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세입자의 주장과 법대로 하겠다는 시행사의 입장차는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 한때 시행사는 용역을 동원해 세입자와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져 배재훈 대책위 대표의 코가 부러지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물밑 협상은 계속됐다. 결국 9월8일 8시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양측은 한발씩 물러났다. 대책위 관계자는 "시행사에서도 성의를 표시해와 우리도 시행사의 안을 받아들이고 현업에 복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합의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민법상으로도 세입자가 주장하는 권리금 문제를 보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권리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선에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재개발 지역에 계속되는 권리금 문제
중구청 관계자가 얘기했듯이 이번 명동 3구역 문제는 권리금 보상과 직결된다. 세입자의 요구는 수평적 이동이었다. 생계를 이어갈 터전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단 4개월치의 영업보상금은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이곳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김용식 씨는 권리금의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모든 재개발 지구의 문제는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문제인데 이를 양성화해서 세입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이익을 보전해 주지 않으면서 막대한 개발 이익만 취하는 것은 횡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상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가게마다 각자 차이가 있다"며 "각자 개인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 시작한 투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러는 부족하더라도 투쟁을 함께 끝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보상금으로 다른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도심권은 여의치 않다. 변두리 지역에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며 "배운 기술이 없어서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정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은 보통 상권이 잘 형성된 지역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권리금도 다른 재개발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며 "권리금 산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일괄적으로 4개월치 영업보상으로 못박을 것이 아니라 2년에 달하는 폐업보상의 중간 수준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명동 3구역이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1983년의 일이다. 그러던 것이 토지주가 2007년 개발에 합의하면서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2011년 명동 3구역의 싸움은 끝났지만 명동 2, 4구역의 개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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