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한민국 IT업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총출동했다. 지난 7일 하루 동안 한국을 찾은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지난 6일 한국에 도착한 슈미트 회장은 7일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쪼개 국내 IT관련 산업의 CEO들과 연이어 만남을 가졌다. 내로라 하는 국내 대기업의 수장들이 슈미트 회장과의 만남을 위해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까지 따로 마련됐다.
 
그만큼 이번 방한 일정은 국내 IT산업에 있어 구글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이끌고 있는 구글에 대한 한국 IT기업들의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구글 안드로이드 성공에 한국의 IT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 7일 단 하루 동안 대한민국 IT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슈미트 회장의 행보와 언급된 주요 내용들을 되짚어봤다. 
 

사진=뉴스1 이명근 기자
 
◆ 이통사에 지원 요청  “NFC 모바일 결제 서비스 협력 강화”  
 
쉴 틈도 없었다. 지난 6일 서울에 도착해 삼성동 파크 하야트 호텔에 짐을 푼 슈미트 회장은 다음날인 7일 오전 9시 SK텔레콤 하성민 사장을 만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미팅에는 구글 존 라거링 안드로이드 파트너십 총괄 이사, 다니엘 알레그레 아시아태평양 사장, 염동훈 구글코리아 사장 등이 참석했으며 SK텔레콤 측에서도 SK플래닛 서진우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대동했다.
 
이 자리에서 슈미트 회장의 첫 마디는 안드로이드 시장을 적극적으로 성장시켜 준 데 대한 감사 인사였다. 슈미트 회장은 “SK텔레콤은 1년 간 무려 1000만대의 스마트폰을 공급했으며, 그중 90%가 안드로이드폰이다”며 “전 세계 구글의 이동통신사 파트너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고 추켜세웠다.  
 
이어 망중립성 문제와 NFC(근거리 무선 통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해 이통사들이 연일 망 과부하로 몸살을 겪고 있다는 하 사장의 요청에 구글측 역시 “이통사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구글이 해당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안드로이드폰 배터리 소모량을 줄이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구글 월렛’ 서비스를 시작하며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 나선 구글 측은 NFC 기반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국내에서도 구글 월렛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지원을 부탁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부문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오에는 서울 남산에 위치한 그랜드 하야트 호텔에서 이석채 KT 회장을 만났으며 오후 1시엔 같은 장소에서 LG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석채 회장은 “KT는 넥서스원, 넥서스S, 갤럭시 넥서스 등 안드로이드의 리딩 디바이스 3개를 모두 출시했다”고 안드로이드 시장 정착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상철 부회장은 직접 자사의 LTE 서비스를 시연하며 소개하기도 했다. 슈미트 회장은 SK텔레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통사 수장들에게 구글 월렛 서비스의 지원을 요청했으며, 인터넷 및 모바일 전반에 걸쳐 협력을 약속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슈미트 회장과 만난 이통사 수장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 제조업체 달래기 “안드로이드 유료화 절대 없다”
 
IT업계 대표들과의 만남을 대부분 호텔에서 진행한 슈미트 회장은, 이날 단 두 곳의 업체를 직접 방문했다. 장소는 강남역에 위치한 삼성전자 본사와 양재동에 위치한 LG전자 서초 R&D센터였다.
 
박종석 LG전자 MC사업부장,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등과 만난 슈미트 회장은 이들 업체에 안드로이드 OS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택 박병엽 부회장과는 그랜드 하야트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 같은 특별 대우는 두 업체가 국내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안드로이드폰 생태계를 키우는 데 ‘일등 공신’인 만큼 파트너십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국내 기업들 역시 안드로이드 의존도 낮추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슈미트 회장이 직접 나서 파트너사들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때문인지 슈미트 회장이 이들 업체에 방문하며 가장 먼저 언급한 것 역시 이 부분이었다. 슈미트 회장은 “안드로이드 0S에 절대 유료화는 없다. 부분 유료화도 없을 것이다”며 무료 라이선스 정책 유지를 확실시했다. 모토로라는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LG 등 가전제품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와는 스마트 TV 부문까지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7일 방한한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오대일 기자)
 
◆ 정부에 생색내기 “‘코리아 고 글로벌’ 프로젝트 추진” 
 
“(슈미트 구글 회장이) 선물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지난달 3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염동훈 구글코리아 대표에게 던진 ‘뼈있는’ 농담 한마디에 이번 방한을 앞두고 국내 IT업계의 기대감은 부쩍 커졌던 것이 사실. 그러나 결과는 여기저기서 실망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통사와 제조업체들을 순회하며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탄탄히 약속한 슈미트 회장은 이날 청와대와 방통위를 차례로 찾아 이명박 대통령, 최시중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과 만난 슈미트 회장이 약속한 것은 크게 두 가지. 국산 소프트웨어와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을 돕기 위한 ‘코리아 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과 유튜브에 K팝 전용 채널을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내 개발자와 해외 투자자의 연결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언급된 바가 전혀 없어 일반적인 공모전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다.
 
관심을 모았던 아시아지역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건립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지난 9월 구글은 아시아지역의 IDC 건립지역으로 싱가포르, 홍콩, 대만을 낙점한 바 있다. 이들 지역에 2000억원 가량을 투자했으며,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 효과도 크게 기대되고 있다. 당시 한국 역시 구글의 IDC 유치에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다. 슈미트 회장은 이와 관련해 “복잡하고 엄밀한 방법으로 효율성을 따져 결정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며 “일반적으로 날씨가 더운 나라에서 데이터센터의 효율성이 높다”고 조심스레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