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찾은 그는 머쓱하게 첫 운을 뗀다. 즐기는 사람이 늘고 국가 관심 사업도 된 탓에, 이제 '자전거 문화'라는 용어를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지나쳤나 보다.
박태환과 김연아. 이 둘의 공통점은 비인기 종목에다 기술력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적 선수로 발돋움했다는 점이다. 조호성(37, 서울시청) 선수 또한 그렇다. 국제사이클연맹(UCI) 트랙월드컵 1위인 그가 두 선수 못지않게 주목 받을 가치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자전거 현주소에 대한 박 편집장의 손사래는 이해할만하다.
자전거는 올림픽 종목에서 육상, 수영에 이어 세 번째로 메달이 많다. 세 종목은 모두 유럽 등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다. 신체조건, 기량이나 선수층, 역사적 배경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관심은 다를 수 있다. 수영은 박태환 선수를 계기로 지원과 관심이 늘었지만, 자전거는 변함이 없다. 수많은 동호회와 다양한 마니아층, 비교적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 뚜르 드 코리아나 각종 전시회, 그리고 국가 정책 사업까지 내건 마당에도 말이다. 이에 대해 박 편집장은 사람들의 부족한 인식, 언론이나 국가의 설익은 이해 등 종합적으로 해석한다.
박창민 편집장의 자전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을 함께 했다. 첫 입문은 '사이클'로 불리는 로드바이크에서 시작해 써스펜션(충격흡수장치) 없는 '철TB'(무거운 MTB의 속칭, 자전거의 뼈대인 프레임이 철로 만들어진 것을 말하며 지금은 가볍고 견고한 카본 소재까지 대중화되었다)로 북한산을 올랐다. 고등학교 때는 적금을 들어 업그레이드된 로드바이크를 구입해 자전거 속으로 깊이 내달렸다. 물론 미캐닉(정비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기술도 책과 어깨 너머로 습득했다.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에 홀로 도로를 달리는 것은 생사를 건 모험이었다. 안내 차량도 없이 달리겠다는 본능으로 시작된 그의 로드(도로 사이클) 역사는 상처로 가득 찼다. 1996년과 2004년에는 각각 호주의 Perth~Brisbane 6300km와 Brisbane~Perth 4700km 구간을 횡단한다.
공과대학을 마치고 곧장 업계에 진출한다. 현장에서 시작했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공학적 이해가 높고, 손재주도 좋아 빠르게 적응한다. 자전거 저변이 확대되는 틈을 잡아, 마침 1998년에 웹매거진 마운틴바이크(현 바이크매거진의 모체)를 세상에 내놓았다. 무분별한 정보보다는 신뢰 있는 내용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금 바이크매거진은 3년 반을 달려 업계 대표 매거진으로 자리 잡았다. "한 해 수 백 통의 명함을 돌렸습니다. 물론 현장에 있으면서 알게 된 업체나 지인 등 매거진을 운영하기에 비교적 좋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만약 업계 담당자분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바이크매거진은 없었을 겁니다"라며 지난날을 돌이켰다.
자전거 생활화와 문화 조성, 두 페달을 밟는 그는 빽빽한 일정을 소화한다. 매거진 관련 현장 취재, 한 해 3-40여 완성차(완성 자전거) 테스트, 정비와 구조 등 공학적 분석, 행사 컨설팅과 해외 방문 등 페달을 멈출 겨를이 없다. 그래도 문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거든다.
"문화는 그런 거 같습니다. 국가가 '우리 OO 문화 만듭시다' 해서 이뤄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은 등을 돌려버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자전거 국가 정책 사업이 그런 거 같습니다. 저나 바이크매거진은 자전거 생활화나 문화 조성에 디딤돌이면 좋겠고, 언론과 국가는 관심과 이해를 높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경직되지 않는 선에서요. 그럴 때에 조호성 선수가 더 힘 있게 페달을 밟고, 자전거 문화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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