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반대해온 하나금융이 돌연 국민연금공단에 사외이사 추천을 요청하면서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본격화되면 금융지주사들이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고 정권 말기에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나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할 경우 기업 가치 훼손과 관치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의 주주권 행사는 당연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부기관을 떠나 기업의 주식를 소유했다면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안했던 이유는
국민연금공단은 2월15일 기준 하나금융 9.35%, 신한금융 7.34%, KB금융 6.86%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로 따지면 3대 금융사의 최대주주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은 그동안 주요 주주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는 등 경영권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가 추천하는 금융계와 재계, 법조계 등 명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해 왔다.
반면 다른 주주들은 사외이사를 적극 선임하고 경영에 참여시키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KB금융은 2대주주인 네덜란드 ING그룹으로부터 사외이사를 추천 받았고, 비상임이사 역시 ING가 선임한 인사가 맡고 있다.
재일교포와 BNP파리바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신한금융은 이들이 대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우리금융도 대주주인 정부 추천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행사에 관여하지 않는 이유는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이 62조원에 달해 일일이 행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 모든 투자 기업에 관여할 경우 국내 재계의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정부 입김이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경영 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직까지 미비하고 무엇보다 기업에 직접 참여할 경우 관치금융이 부활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 번복한 하나금융에 KB·신한금융 곤혹
3개 금융지주사 역시 이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수차례 표명해 왔다.
특히 김승유 회장은 작년 4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기업 경영 자율성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반 기관투자자들은 자유롭게 포트폴리오를 짜서 사업을 하지만 이사회까지는 참여하지 않는다"며 "주주의 권리로 인사권을 생각할 수 있는데 (국민연금공단 주주권 참여는)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최근 갑작스럽게 입장을 번복하고 국민연금공단에 사외이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KB금융과 신한금융이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면서 "갑작스런 국민연금 사외이사 추천 요청에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아직까지 국민연금공단에 사외이사를 추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청한다면 금융사들은 반박할 논리가 사실상 없다"면서 "지금으로서는 (국민연금이) 어떻게 나올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광우 이사장 "대주주 의무 다하겠다"
국민연금공단 역시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어떤 방식이든 기업 훼손과 관치금융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투자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더구나 일부 정치권과 법조인들은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이 국민의 입장에서 주주권을 성실히 행사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이미 마련돼 있다"며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이 같은 책임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율려의 서정욱 변호사 역시 "국민연금이 3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않으면 임채민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전광우 이사장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변호사 100여명이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추후 지역별로 대표성을 띤 일반 국민을 모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특히 "하나금융이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했는데 국민연금은 관련 가이드라인조차 만들어놓지 않았다"면서 "외국 국민연금공단 사례와 비교하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며 확고한 입장을 드러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참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면서 "앞으로 어떤 방식이든 금융사와 기업들에 대한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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