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받는 모든 업소(가맹점)에는 신용카드를 읽을 수 있는 단말기가 있다. 이 단말기 설치는 원칙적으로 신용카드 가맹점주가 해야 하지만 가맹점주 스스로 비용을 내고 설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신용카드 밴(VAN:Value Added Network) 사업자가 무료로 설치를 해주고 있다. 그 대신 밴 사업자는 자사가 설치한 카드 단말기를 이용해 신용카드 거래를 하면 승인이 날 때마다 건당 70~120원의 수입을 챙긴다.
이 때문에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낮추면 카드사 역시 가맹점 수수료를 낮출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밴사는 금융당국의 관리 소관이 아닌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감독을 벗어난다. 이 때문에 밴 수수료에 대해 규제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요즘 같이 수수료율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감독당국도 밴사가 일정 역할을 해줬으면 하겠지만 감독당국의 권한 밖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 시장 커졌지만 밴사 수수료 인하 없어
밴사는 신용카드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카드사만큼 호황을 누렸다. 현재 국내의 밴 사업자는 16곳 정도. 그중 한국정보통신(KICC), KSNET, 나이스정보통신(NICE), 퍼스트데이터코리아, 한국사이버결제, 스타밴코리아, 금융결제원 등이 주요 업체다. 업계 1위인 KICC가 지난해 올린 수입은 약 1571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 역시 157억원에 육박한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모의 경제에 맞게 시장이 커진 만큼 수수료가 인하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가맹점 수수료는 정률제이고, 밴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정액제인 것부터 잘못됐다"며 "이 때문에 중소형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밴사는 수수료가 카드사와 계약을 통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 밴사 관계자는 "1986년 처음 밴 업무를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수수료를 높인 적이 없다"며 "현재의 수수료 역시 카드사와의 계약을 통해 이뤄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밴수수료를 현 가맹점수수료처럼 정률로 바꾸는 문제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며 "카드 결제금액이 1만원 이하의 몇천원이라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정률제가 낫겠지만 결제 금액이 큰 대형가맹점에서는 정률제로 변경할 경우 수수료 비용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리베이트 관행도 수수료 높이는 원인
"리베이트 관행만 뿌리 뽑아도 밴사 수수료를 낮출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밴사와 가맹점 사이에 공공연한 리베이트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밴사 입장에서는 거래량이 많은 대형가맹점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기만 해도 자연히 수입이 발생한다. 밴 사업자로서는 대형가맹점에 큰돈을 찔러 주고서라도 단말기를 설치만 하면 수수료 수입으로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일부 밴사는 이를 계약서에 명문화할 정도로 뒷돈 관행이 굳어졌다. 밴사의 경쟁이 극에 달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도 문제시하지 않았던 공정거래위원회는 뒤늦게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밴사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은 입찰을 통해서 밴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이것이 이슈가 돼서 공정위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 카드 단말기 종류 따라 관리비용도 차이
대형가맹점과 중소형가맹점은 가맹점 수수료와 별개로 어떤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느냐에 따라 비용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현재 밴사가 가맹점에 제공하는 카드 단말기는 크게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와 DDC(Draft Data Capture)로 나뉜다.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카드를 사용할 때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규모가 큰 가맹점의 단말기에서는 1장의 영수증이, 일반 중소형가맹점에서는 3장의 영수증이 나온다. 3장의 영수증이 나오는 기기는 DDC로 영수증 3장은 각각 소비자, 신용카드사, 가맹점 보관용이다. 이 기기에는 밴사의 역할이 크다. 가맹점이 보관하는 영수증은 밴사가 수거해 관리하는데 여기에서 용역비용이 발생한다.
영수증 1장이 나오는 기기는 EDI로, 주로 대형 가맹점에 설치돼 있다. 대형 가맹점은 처리해야 할 카드 승인 데이터량이 많고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데이타화해 보관할 수 있는 역량이 되기 때문에 밴사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다. 밴사에 내는 비용 역시 적다.
밴사 관계자는 "EDI 기기는 가맹점이 자체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용역비용이 적다"며 "반면 DDC는 밴사가 점포수거를 대행하고 리스크 관리를 하는 등 용역비가 추가되기 때문에 EDI와 비교해 몇십원 정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 IC카드 교체보다 시급한 가맹점 단말기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교체하기 위해 홍역을 치러야 했다.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IC카드 교체가 연기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IC카드 대체가 금융사고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IC카드로 교체를 해도 대부분 가맹점에서는 마그네틱카드만 읽을 수 있는 단말기가 보급돼 있다. 이 때문에 국내의 IC카드는 마그네틱과 병행돼 있어 복제에 따른 금융사고에 여전히 노출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IC카드 교체를 서두르기 위해서는 가맹점의 카드 단말기의 보급이 우선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연 선임연구원은 "현재 ATM기기에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보완의 여지가 있는 반면, 가맹점의 단말기는 서명 방식이어서 여전히 사고 위험이 있다"며 "가맹점의 카드 단말기 교체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단말기를 누가 교체할 것인지가 문제다. 단말기를 교체하는 것은 가맹점의 몫이지만 IC카드 단말기의 보급은 밴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이 IC카드를 읽을 수 있는 단말기를 설치하도록 밴사에 권고할 수 없다. 영세한 밴사들은 IC카드 단말기 보급을 위해 카드사들이 일정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나, 카드사들은 밴사의 역할을 떠안을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물론 방통위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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