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말이면 전세계 공연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을 포함한 미국 주요 도시의 희곡작가, 연극평론가, 연극계 기자들이 인구 56만여명의 작은 도시, 켄터키주 루이빌로 모여든다.

2월말부터 4월초까지 진행되는 휴매나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할 전문가 주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휴매나 페스티벌은 올해로 36년의 역사를 쌓아온 순수 연극 축제다. 이 연극 축제에 미국 연극계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총출동하는 이유는 매년 엄선된 7편의 새로운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휴매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루이빌의 액터스 띠어터는 기성 작가든 신인 작가든 관계없이 공연 에이전트를 통해 희곡을 제출받아 최고의 작품 7편을 선정한다. 이후 희곡작가와 의논해 연극감독과 배우들을 뽑아 새로운 연극 7편을 완성해 무대에 올린다. 신인작가만을 대상으로 10분짜리 단막극도 공모해 3~4편을 선보인다.

휴매나 페스티벌 출품작들은 이후 뉴욕을 포함한 미국 곳곳의 무대에 오르고 휴매나 페스티벌에 10분짜리 단막극을 올린 신인들은 본격적인 희곡작가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된다. 휴매나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희곡 중 3편이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 페스티벌의 명성과 권위는 높다.

흔히 예술은 사회를 담는다고 한다. 올해 휴매나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7편의 연극 역시 오늘날 미국의 얼굴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직면한 문제 3가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 3편을 소개한다.
 

◆버라이**온: 서비스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미국의 평범한 여성 제니는 어느 날 휴대폰 요금이 미납됐다는 고지서를 받는다. 한번도 지불해야 할 돈을 미뤄본 적이 없는 성실한 소시민이었던 제니는 의아해하며 자신의 납부 기록을 확인한다. 미납했다는 휴대폰 요금은 이미 납부했지만 그 즈음 휴대폰 요금을 받은 회사가 모기업에 흡수되면서 전산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제니는 고객 콜센터에 전화해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고 처리하겠다는 대답을 듣는다. 하지만 다음 달에도 요금이 미납됐다는 고지서가 날아오고 제니는 다시 콜센터에 전화한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음에도 문제는 9개월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제는 미납요금을 내라는 독촉 전화까지 받고 있다.

사소한 고지서 문제로 거의 신경쇠약에 걸린 제니는 친구를 통해 기업의 터무니없는 고객 서비스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석한다.

그 곳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휴대폰 서비스를 취소했지만 엉뚱하게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처리돼 7년째 휴대폰 서비스가 끊겨버린 여성, 4% 대출이자라는 광고를 보고 문의했다가 얼렁뚱땅 32%라는 고금리에 돈을 억지로 빌리게 된 남성,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샀지만 자신의 대출채권이 여러 기관에 팔리는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집이 압류당한 여성 등이 있었다.

과연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통신회사나 대부업체, 모기지회사 등이 이처럼 엉터리로 일을 처리할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 과장이 있다 해도 이 연극이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공감한다.

이 연극의 한 장면처럼 고객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녹음된 안내 목소리와 음악만 몇 분이고 지칠 때까지 반복되고 간신히 콜센터 직원과 연결돼도 이 직원은 목소리만 나긋나긋 친절할 뿐 이후에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고객 우선주의를 외치지만 결코 고객의 불만을 해결해주지 않는 기업들의 엉터리 서비스 정신은 과연 미국만의 문제일까.

 

◆가슴을 파고 드는 아픔을 삼키며: 뚱뚱한 미국, 문제는 무너지는 가정?

이비는 17살의 뚱뚱한 소녀로 이혼한 엄마 낸스와 함께 살고 있다. 낸스는 이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신과 달리 뚱뚱한 이비가 실은 남부끄럽고 한편으론 딸을 부끄러워하는 자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이비는 엄마의 관심을 원하지만 엄마의 태도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엄마를 까칠하게 대한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속으로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

이비가 왜 비만이 됐는지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비의 엄마 낸스가 19살 때 임신해 이비를 낳고 결혼했다는 것, 이비의 아버지는 딸이 어렸을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만 나온다.

하지만 이 배경만으로도 어린 나이에 이비를 낳고 남편마저 떠나버려 어쩔 줄 몰라 했을 낸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CDC)가 2010년까지 2년간 조사한 결과 20세 이상 미국 성인 중 36%가 비만이고 20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도 17%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낙후된 공공교통 시스템, 그러다 보니 10분 거리도 늘 자가용을 몰고 다녀 점점 더 걷지 않게 변하는 생활습관, 짜고 기름진 음식에 각양각색의 정크푸드들. 이러한 요인들이 미국을 비만으로 만드는 표면적인 이유들이다.

하지만 비만은 이 연극이 암시하듯 단순히 운동 부족과 잘못된 식습관의 문제를 넘어 가정의 붕괴, 외로움, 소외, 의사소통의 단절 등 현대 미국이 앓고 있는 질병의 총체적인 상징일 뿐이다. 
 

◆상속세: 고령화 사회에서 유산상속은 꿈도 꾸지 마라

부유한 할머니 맥심은 요양원에서 간호사 티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맥심은 외동딸이 자신의 유산을 노려 티나를 통해 자신을 서서히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맥심은 티나에게 딸이 자신을 죽이는 대가로 얼마를 주기로 했느냐고 물으며 자신을 계속 살아 있게 해주면 큰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돈이 필요했던 티나는 맥심을 서서히 죽여 달라는 제안 따윈 받지도 않았지만 제안을 받은 것처럼 거짓말을 하며 돈을 얻어낼 궁리를 한다.

어느 날 맥심의 딸이 어머니를 만나겠다고 찾아오지만 티나는 맥심이 딸을 만나기를 거부한다며 둘의 만남을 방해한다. 하지만 뒤돌아서선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다 시간은 갑자기 20년 후로 훌쩍 넘어간다. 같은 요양원에 누워있는 맥심에게 사회 복지사가 찾아와 돈이 떨어져 이런 비싼 요양원에 있을 수 없으니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공공 양로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부유하던 맥심, 딸이 자신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맥심은 20년간의 요양원 생활에 돈을 다 써버리고 자신이 미워했던 딸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 찰리에게 제발 양로원으로는 보내지 말아 달라고, 자신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미국은 이민자가 많아 청장년층 인구기반이 튼튼한 편이지만 노인 문제로 고심하는 것은 다른 선진국들과 다를 바 없다. 부유한 노인이었지만 20여년의 요양원 생활에 돈을 모두 써버린 맥심, 그리고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기도 빠듯한 자신의 처지에 고민하는 찰리의 모습이 미국만의 자화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