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권이 일제히 대출 최고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지만 혜택을 받는 고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 담합 의혹 등으로 이미 은행에 크게 실망한 고객들이 또 다시 은행들의 '꼼수'에 속을 태우는 실정이다.
사진_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실효성 없는 대출금리 인하 논란
최근 학벌 등으로 금리를 차별해 논란을 빚은 신한은행은 서민금융·중소기업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가계대출 최고금리를 17%에서 14%로 인하했다. 기업대출 역시 최고금리를 15%에서 12%로 3%포인트씩 내렸다.
고금리 이용자들을 위한 대책안도 내놨다.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고객을 대상으로 연 14%대 금리의 서민전용 대출상품도 선보이기로 한 것. 아울러 영업점장이 임의로 금리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었던 '금리전결권'도 전격 제한하기로 했다. 대출금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대출서류 조작 논란으로 곤혹을 치룬 국민은행도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최고금리를 연 18%에서 15%로 3%포인트 인하했다. 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보증을 받아 이용하는 보증부여신은 최고금리를 18%에서 13%까지 5%포인트 낮췄다.
운 좋게 비난 대상에서는 벗어난 다른 시중은행들도 금리인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8월13일부터 가계대출 최고금리를 16%에서 14%로 2%포인트 인하했다. 기업은행 역시 8월1일부터 중소기업대출 최고금리를 연 12%에서 10.5%로 인하했다. 연체대출 최고금리 역시 연 13%에서 12%로 1%포인트 낮췄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연체대출 최고금리를 연 18%에서 13%로, 올해 초부터는 중기대출 최고금리를 연 17%에서 12%로 내렸다.
우리은행도 현재 17% 수준인 대출 최고금리를 14%로 3%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대출금리 상한선을 최고 19%에서 17%로 2%포인트 낮춘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고금리 인하가 확정될 경우 약 8개월만에 또다시 3%포인트를 인하하게 된다.
지주계열 저축은행도 잇따라 금리인하에 나서고 있다. 하나저축은행은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기존 제2금융권 대출보다 금리를 다소 낮춘 새로운 신용대출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학생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특정 고객층을 위한 상품이 주를 이뤘지만 앞으로는 폭넓은 고객층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CD금리 담합 의혹과 대출서류 조작 논란 등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또한 감사원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은행 가산금리 체계를 비판하며 '금리 손질' 기회를 엿보는 점도 이번 대출금리 인하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은행들의 꼼수 전략이다. 일부 금융권이 최고대출금리를 인하했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대상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A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고객 80만명 중 0.8%인 7000명 정도만 이번 금리인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번 금리인하로 국민은행이 연 52억원, 신한은행이 71억원, 하나은행이 10억원 정도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대출규모에 비하면 대출인하 효과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민병두 통합민주당 의원은 "최근 몇몇 은행들이 2~3%포인트씩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있지만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면서 "얼마 전 감사원 감사결과 은행들이 부당하게 수취한 이자이익은 무려 20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대출금리 인하?… 생색내는 보험사들
이와 같은 상황은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교보생명은 10월부터 약관대출 최고금리를 기존 13.5%에서 10.5%로 3%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흥국생명도 현재 4.75∼13.5%인 확정금리형 약관대출금리를 내달부터 4.75∼11.5%로 내리고 확정금리형 가산금리도 1.5%에서 0.5%로 1%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알리안츠생명 역시 현재 13.5%인 약관대출 최고금리를 내달부터 11%로 내린다.
앞서 지난 6월 AIA생명은 12.3%에서 11.3%로, 대한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은 11.5%에서 10.5%로, 삼성생명은 10.5%에서 9.9%로 각각 내렸다. 신한생명도 10.5%로, 현대라이프는 11.5%로 각각 인하했다.
NH농협생명은 이달에 약관대출금리를 6.1%로 0.1%포인트 내렸다. 하나HSBC생명도 금리연동형 약관대출 금리를 4.8∼6.55%에서 4.38∼6.45%로 하향 조정했다. PCA생명는 금리연동형 약관대출 금리를 4.9∼7.5%에서 4.6∼6.5%로 내렸다.
하지만 최고금리를 낮추겠다고 밝힌 약관대출 상품은 대부분 '백수보험'(100세까지 보장)을 담보로 하는 상품이다. 이 보험은 시중금리가 연 20% 이상이던 1980년대 초반에 판매된 상품이다. 이후 배당금 미지급 논란 등이 불거지며 대부분의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한 상태다.
예컨대 B보험사의 경우 100여명만 이 보험을 유지하고 있는 등 전체 계약에서 백수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서민금융 지원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서 "이제는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금융권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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