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동안 그는 구두를 만졌다. 충남 서산 출신의 구두기능공은 30년 뒤 국내 구두브랜드 3위, 콤포트 슈즈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중견업체 대표로 성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구두’를 만들고 싶다는 안토니의 김원길(52) 대표다.
 
국내 내로라하는 구두 브랜드 중 유일한 기능공 출신 CEO. 덕분에 철저한 품질관리로 10년 가까이 흑자를 이어가며 경영자로서도 인정을 받아 지난 21일에는 ‘중소기업을 빛낸 얼굴들’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 정도로 회사를 키워놓았으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무게 잡으며 일할 법한데, 그는 여전히 아침이면 구두공장에 먼저 들러 기능공들을 격려한다. 그래서 본사 역시 도심 한가운데 화려한 건물보다는 일산 외곽 공장 한켠에서 기획과 디자인 등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 지난 21일 ‘구두 업계의 전설’이 된 김 대표를 만났다.


사진_류승희 기자 
◆ 전설이 된 구두 기능공 “막 들이대서 성공했죠”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한 그가 잠깐 사무실을 나가더니, 어느새 직접 차를 타와 취재진 앞에 내놓는다. 대표라는 직함 때문에 괜스레 무게를 잡는 대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목소리는 시원시원하게 힘이 잔뜩 실려있다. 내용 또한 거침없다.


"사람 발 모양이 다 다르잖아요. 각자의 발에 맞춰 가장 편하면서도 예쁜 구두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중학교 졸업하고 구두 시작하기 전 제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중장비 다루면 돈을 벌 수 있다 해서 기술을 배워보기도 하고 막노동도 많이 했고요. 다른 일 다 해봐도 구두만큼 재미 있는 게 없더라고요. 신기한 게 40년 가까이 구두만 바라보고 살면서도 단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일까. 스스로의 인생을 ‘구두의 사다리를 오르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김 대표는 그 사다리가 끝도 없다면서도, 여전히 지치는 기색은커녕 그 사다리를 오르는 일에 열정이 넘치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어 하는 일이라 해도, 충남 서산 출신의 구두 기능공이 국내 대표적인 구두업체 CEO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파란만장 했을까. 
 
김 대표는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이댐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일단 저지르지 않으면 배우지 못한다. 그것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들이댐’이 궁금해진다.
 
첫번째 그가 꼽은 건 18살에 더 좋은 기술을 익히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을 때다. 그는 “서산 촌놈이 영등포에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얼마나 들이대며 돌아다녔는지, 그래도 그 덕에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두번째는 영등포에서 일하면서 기능대회에 나갔던 일을 떠올린다. 당시 원래는 다른 선배가 기능대회에 출전하기로 돼있었다고 한다. 사정이 생겨 그 선배의 출전이 어렵게 되자 김 대표는 회사 사람들에게 “나를 내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초짜였던 그가 대회에 출전한다는 건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결국 그를 대회에 내보냈고, 그는 당당히 실력으로 제화부문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세번째는 기능공에서 출발한 그가 품질관리·영업까지 다양한 분야를 거친 후 구두사업을 시작했을 무렵. ‘좋은 구두를 많이 보고 배우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이탈리아의 구두전시회 등을 찾아 다니던 때였다. 그곳에서 대표적인 명품 구두장인 바이네르를 만난 그는 “이 구두를 나를 통해 한국에 팔아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과는 당연히 거절. 아무에게나 명품 구두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연히 말도 안되죠. 그래도 제가 끈질기게 설득을 하자 그쪽에서 여지를 조금씩 주더라고요. 그때를 놓칠 새라 구두 3000켤레를 주문해버렸어요. 낯선 동양인이 첫 거래에 구두 주문 3000켤레. 자본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을 때인데 제가 생각해도 그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이후에는 바이네르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정말 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그는 “들이대고 도전하는 것도 일종의 버릇이다”며 “말이 안되는 것 같아도 자꾸 들이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전하는 삶 자체가 몸에 밴다”고 덧붙였다. 
 

사진_류승희 기자
 
◆"15년 내,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제패" 자신 
 
바이네르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 역시 바꿔놓았다. 현재 안토니는 바이네르의 국내 공식 수입사로, 이탈리아의 물건을 수입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 한국공장에서 바이네르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브랜드의 인기가 높아져 제품 생산 라이선스를 요구하자 바이네르는 두말하지 않고 기꺼이 김 대표에게 구두 생산을 맡겼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명품 브랜드인 만큼 제품 생산까지 그에게 의지했다는 건 바이네르가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는 바이네르가 세상을 떠난 후 고인의 아들이 이탈리아 본사를 물려받았다. 김 대표 역시 본사의 지분 60%를 보유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영적인 역할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바이네르는 세계가 알아주는 명품 구두예요. 그런 구두를 생산하며 품질을 인정 받았으니 국내 독자 브랜드의 성공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저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래서 제 목표는 ‘예쁘고 편한’ 신발을 뽑아내는 거예요."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해외진출도 준비 중이다. 바이네르 브랜드의 경영권을 확보한데다 제품의 상당수를 실제 안토니쪽에서 생산하고 있는 만큼 김 대표는 주도적으로 아시아, 호주 등에서의 바이네르 해외진출을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물론 바이네르가 해외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국내 독자 브랜드인 안토니 역시 해외시장에서 서서히 범위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계획도 준비 중이다.
 
“매출을 얼마나 올리겠다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신고 싶어하는 구두,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면 저절로 외형적인 규모 역시 커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성공이라는 게 ‘돈을 많이 번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내 옆에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에서 존경 받으며 사는 것. 앞으로 15년 내에 그런 회사를 만들어서 세계 명품 구두들을 제패하는 게 목표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