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자유, 스무살의 011, TTL." 1990년대 말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켰던 SK텔레콤의 TV광고 카피 중 일부다. 신비스러워 보이는 소녀의 절망적이고 허무한 눈빛으로 일관했던 이 광고는 당시 신세대층을 중심으로 'TTL 신드롬'을 일으켰다.
SK텔레콤은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저렴한 요금제인 이 'TTL' 광고 덕분에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봤다.
그런데 10년이나 훌쩍 지난 지금, SK텔레콤의 공식 페이스북에 'TTL'이 다시 등장했다. 회사소개란 '연도별 히스토리' 코너에 1999년 4월 당시의 TTL 광고 내용을 담은 3컷의 포스터가 공개된 것.
SK텔레콤 측은 "기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소비자들과 보다 감성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며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기업의 스토리를 추억을 떠올리는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복고'를 찾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기업들의 '향수 마케팅'도 점점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앞선 'TTL' 사례처럼 단순히 추억을 연상시키며 기업의 이미지 마케팅에 나선 기업이 있는가 하면 복고풍을 가미한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의 감성에 적극 호소한 기업도 눈에 띈다.
◆디지털 카메라에 '필름 카메라' 향수 입혀
가장 거센 복고풍이 일고 있는 분야는 바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다. 디지털 카메라 제품은 소비자 사이에서 보편화되면서 제품간 성능의 격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좁혀졌다. 따라서 카메라업체들은 외관은 기존의 '필름 카메라'와 비슷하지만 최신 성능을 탑재한 '복고풍' 디지털 카메라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차별화 경쟁에 나섰다.
올림푸스의 하이브리드 카메라 'OM-D'는 올림푸스 최초의 일안반사식(SLR) 카메라이자 약 40년간 이어진 필름 카메라 OM 시리즈의 클래식한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한 제품으로, 시장에서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후지의 'X-Pro1'와 'X-S1'도 대표적인 복고풍 디지털 카메라로, 고성능 단초점 렌즈와 26배 수동식 고배율 줌 렌즈를 각각 앞세워 카메라 시장의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사실 디지털 카메라의 복고 바람이 최근 몇년 사이 갑자기 분 것은 아니다. 엡손이 이미 지난 2005년 필름카메라인 보이그랜더를 모델로 한 디지털 카메라 'R-D1'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이 제품은 300만원대에 이르는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올림푸스가 1950년대에 출시한 필름카메라 '펜'의 외형을 살린 디지털 카메라 '펜'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여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올해까지 복고풍의 대세를 이어가게 한 계기가 됐다.
◆신발업계, '옛 것' 묻어나는 디자인 출시
같은 복고형 제품이지만 신발업계에선 디자인이나 제품의 재질에 '옛 것'을 입힌 사례가 일반적이다.
ABC마트의 경우 최근 1990년대의 드라마와 영화, 스포츠 등에 자주 등장했던 에어로빅 패션이나 빈티지 패션을 자사의 가을 판매상품의 최전선에 배치했다. 10월초 ABC마트에서 단독 출시하는 컨버스의 '프로레더'(8만9000원)가 대표적인 제품. 이 신발은 과거 NBA를 지배했던 최고의 스타 줄리어스 어빙이 신었던 시그니처 농구화를 재탄생시킨 것으로 ABC마트 측은 이 제품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푸마의 '스웨이드 클래식 에코'(8만9000원)와 '블루버드'(8만9000원) 또한 레트로 컬러와 스웨이드 소재의 갑피를 입혀 현대화된 레트로 빈티지 스타일을 완성한 제품이다. 여기에 아디다스의 '가젤 오리지날'(10만원대) 시리즈 역시 아디다스의 상징인 오리지널 삼선 디자인의 스니커즈에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해 레트로 빈티지 느낌을 살렸다.
ABC마트의 장문영 마케팅팀장은 "복고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문화코드"라며 "올 가을 신발업계는 기존 오리지널 디자인은 고수하되 80~90년대 초에 사용된 팝업 칼라톤을 적용하거나 스웨이드 재질을 사용해 빈티지한 감성을 살린 신제품을 많이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첨단 IT기기에도 '아날로그 경쟁' 치열
주로 음악이나 영화 등의 분야가 복고 열기의 '진원지'로 꼽히다 보니 유통시장에선 스마트폰·태블릿 등 첨단 IT기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힌 제품이 인기를 끄는 모양새다.
특히 오픈마켓 시장에선 복고풍 디자인을 채택한 스마트폰 케이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이들 제품 대부분은 형광색이나 원색 등 소위 '촌스러운' 색깔의 것들이다. 가장 인기있는 제품 중 하나인 '게임보이 케이스'는 어린시절 즐겼던 게임의 추억을 되살려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에 무선전화기 모양을 한 스마트폰 케이스 '코코폰 스마트폰 수화기'의 판매량도 최근 눈에 띄는데 이 제품은 예전 70~80년대 무선전화기의 수화기를 그대로 연상시킨 디자인이 특징이다.
헤드폰 제품도 복고 디자인이 유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은 작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이어폰을 선호했지만 최근 들어 귀에 걸치는 하우징 부분이 크고 디자인이 화려한 헤드폰이 시장에서 '상한가'다. '연예인 헤드폰'이라 불리는 '비츠 바이 닥터드레'의 경우 10만원대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30만~40만원대의 '소울 바이 루다크리스' 제품 역시 고가임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 축음기가 연상되는 스탠드형 음향기기인 '아이폰용 혼스탠드 실리콘 확성기'나 옛 라디오 모양의 클래식한 '야마하 TSX-80 데스크탑오디오' 등도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복고 열풍이 IT기기로 확대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한 디자인 제품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며 "이는 복고풍의 스마트기기 액세서리로 추억과 재미를 느끼려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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