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대 신용평가사 '피치'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기존의 'A+'에서 한단계 높은 'AA-'로 상향조정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 

 

피치에서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올린 것은 2005년 10월 이후 7년 만이다. 피치에 앞서 무디스도 지난 8월27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1'에서 'Aa3'으로 한단계 상향조정한 바 있다. 

 

무디스의 'Aa3'는 피치의 'A+'와 똑같은 등급이다. 또한 국제신용평가사 중 가장 보수적인 S&P도 피치에 이어 9월14일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2005년 7월 이후 7년 2개월 만에 'A+'로 올렸다. 

 

이는 일본과 중국 바로 아래 등급이다. 국제신평사들은 북한에서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져 갑작스러운 붕괴로 인한 위험이 줄어들었고, 경제지표는 둔화됐지만 정부 순부채 수준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21%로 추정돼 재정이 건전하며 대외부채 수준이 낮은 것을 등급 상향의 이유로 들었다.

 

3개 신평사가 지난해 이후 일제히 등급을 올린 나라는 A등급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국가신용등급 평가는 국가의 재정능력과 위기가 왔을 때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전세계 경제 및 주식시장이 '위기'라는 단어에 휘둘리는 시기에 더욱 의미 있는 결과라 하겠다. 국가신용등급 향상은 금융회사와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조달하는 비용을 장기적으로 줄이는 영향을 가져오므로 개별 기업의 이자비용이 줄어드는 호재도 된다. 

 


 

◆우리보다 20년 앞서간 일본 

 

고대에는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등 한반도의 경제력과 문화가 일본 열도를 앞섰지만 근대사와 현대사에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훨씬 앞섰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구한말 쇄국정책을 펼쳐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두나라간 국력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그에 따라 한일합방과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은 한국인에게 미묘한 감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우리와 외모가 가장 비슷한 국가이며 동북아에서 협력 대상국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명백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사실조차 부인하는 정치인이 일본에는 아직도 존재하고,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과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1968년에 서독을 넘어선 뒤 최근 2010년까지 42년간이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0년 달러환산 GDP에서 일본을 넘어섰지만 1인당 GDP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은 미국 턱밑까지 부상하면서 미국인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한국인은 일본을 폄하하고 싶은 정서적 본능이 있고 국제적으로도 일본은 경제동물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국가다. 미국에서 출판된 책들 중 일본이 주제인 책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경제력의 부강은 흔히 스포츠의 중흥으로도 나타난다. 1964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미국과 소련에 이어 메달수에서 3위를 차지했고 그 후로도 매 올림픽마다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한국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 덕분에 해방 이후 최초로 올림픽에서 한개의 금메달을 기록했다. 

 

한국이 일본을 20년가량 뒤쫓아간다는 얘기가 있다. 올림픽에서도 도쿄올림픽 이후 딱 20년 만인 1984년에 LA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를 포함해 총 18개의 메달을 획득, 종합순위 10위에 올랐다. 다만 동서 냉전으로 인해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한 반쪽 올림픽이었던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제는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 등에서 거둔 성과가 일본과 비슷하거나 앞서는 상태가 됐다. 국가신용등급보다 선행해 일본을 앞선 셈이다.

 

◆세계 수준의 일본 문화, 한국은 걸음마 

 

일본의 경제력이 세계 최고 수준을 향해 가던 시절, 일본 문화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서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사카모토 큐가 부른 'Sukiyaki'라는 노래는 1963년 6월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3주간이나 1위를 차지했다. 여성 아이돌그룹으로는 1979년 핑크 레이디가 'Kiss In The Dark'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37위까지 올라갔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신중현씨의 자작곡인 '님아' '커피한잔'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자매 듀오 펄시스터즈가 미국에 진출, 활동을 본격화하다가 1976년 언니 배인순의 결혼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 최초로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가수는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이난영씨의 두딸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다. 미국곡을 리메이크한 'Charlie Brown'은 1962년 빌보드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처럼 특출한 연예인이 있었음에도 최근 한류 열풍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전까지는 한국 아티스트의 세계 선진국 무대 진출은 미약했다. 그런 점에서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2009년 10월31일 빌보드 차트 76위에 오르고, 최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9월13일 업데이트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 64위로 진입한 것은 의미가 크다. 

 

미국 그래미상에서도 일본의 아티스트들은 여러 차례 수상했다. 지난해 그래미상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코가 래린 칼튼과 조인트한 앨범 'Take Your Pick'으로 최우수 팝 인스트루멘털 앨범상을 받았다. 그는 통산 누계 판매량이 8000만장에 육박하는 일본 음악계의 전설이자 아시아 락밴드로서는 최초로 헐리우드 '락의 전당'에 입성(2007년)한 락 유닛 '비즈'의 멤버다. 아직까지 한국의 아티스트가 그래미상을 쳐다보기엔 요원한 듯싶지만 언제 누가 물꼬를 틀지 모른다. 


 

영화계도 일본은 일찌감치 세계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작도 여러편이다. 1954년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감독의 컬러영화 <지옥문>이 아카데미상에서 현재의 외국어영화상의 전신에 해당하는 특별상과 의상디자인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1년),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의 <미야모토 무사시>(1955년)도 아카데미상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데루수 우자라>(구로사와 아키라)가 1975년 외국어영화상 수상했고 1985년에는 <난>(구로사와 아키라)이 의상상을 수상했다. 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이 2002년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굿바이>(타키타 요지로)가 외국어영화상, <작은 사각의 집>(구니오 가토)이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는 등 일본영화가 두편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에서도 그랑프리를 8번이나 수상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음으로써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사상 최초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일본에 비해서는 무려 61년이나 뒤진 셈이다. <피에타>는 잔인하고 불편한 장면으로 시작되지만 영화가 끝날 때에는 관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베니스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기자단으로부터 10여분간 감동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을 가진 피에타(Pieta)란 이름의 조각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통해 하는 성모상으로, 미켈란젤로 이름이 기록돼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세계적인 조각상 피에타의 분위기를 동영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느끼게 된다. 

 

<피에타>는 내년 2월에 열리는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할 한국영화로도 선정됐다. 한국에서는 해마다 작품을 출품했으나 한번도 후보작에 들지 못했다. <피에타>에는 전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부의 양극화, 자본주의 폐해가 녹아 있다. 또 시나리오의 탁월함과 함께 마지막에 남는 감동의 여운이 크기 때문에 후보작에 충분히 들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필자 개인 전망이지만, 한국 최초로 수상까지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한국영화 수준도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고 일본이 그동안 수상한 경력을 보자면 이제는 한국도 수상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앞지르고 세계 속으로?

 

일본의 제조업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서 발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인 1962년부터 1981년까지 4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의 실시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발전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다. 반도체·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일본과 겨룰 수 있거나 더러는 능가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다만 아직까지 주요 부품과 핵심기술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점은 아쉽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 한국은 기술특허수지에서 적자국인 반면 일본은 세계 2위의 흑자규모를 자랑한다. 

 

노벨상에서 일본인 수상자는 자연과학 분야 15명, 인문학 분야 2명이 있고 수학의 필즈상 수상자도 3명이나 된다. 하지만 한국인은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순수학문의 육성도 중요과제다.

 

일본은 저성장과 GDP 대비 230%에 육박하는 국가채무비율 등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이 우리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이다. 자동차 보유율도 한국을 훨씬 능가한다. 지난해 GDP는 5조8690억달러로, 1조1260억달러인 우리의 5배나 된다. 또 1인당 GDP는 4만4600달러로 2만1500달러인 우리보다 2배나 많다. 하지만 물가와 생활수준을 감안한 구매력 평가(PPP) GDP는 차이가 훨씬 적으며, 2017년에는 한국이 일본과 비슷하거나 일본을 앞지른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ADB(아시아개발은행)는 한국의 GDP가 2030년에는 일본을 넘어서고 2050년에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여러 정황을 살펴보건대 한국이 현재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 속에 부상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