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인종별로 사는 동네가 확연히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어느 동네엔 주로 흑인이 모여 살고 어느 동네엔 유색인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백인 일색이다. 하물며 한국인도 유독 많이 몰려 사는 동네가 따로 있다. 

 

뉴욕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만 해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동네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인종 구성이 다를까 싶을 정도다. 버겐카운티 북쪽 알렌데일과 월드윅에는 주로 백인이 모여 산다. 

 

집값이 비싸 백인, 특히 유대인이 많이 사는 테너플라이와 클로스터, 노우드, 크레스킬 같은 버겐카운티 중부지역은 학군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 몇년 사이에 한국인 비중이 크게 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버겐카운티에서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테너플라이 바로 옆 크레스킬이다. 이곳엔 초등학교가 2개 있는데 한국인 학생 비율이 40%에 달한다. 이민자와 주재원, 기러기 엄마의 자녀는 물론 한국인과 다른 인종이 결혼해 낳은 자녀까지 포함한 비율이다. 

 

크레스킬 초등학교엔 한반에 한두명가량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있지만 아시아인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가 히스패닉이라고 알고 있었던 반 친구도 알고 보니 인도 아이였다. 테너플라이, 클로스터, 노우드 등 인근 동네도 크레스킬과 다를 바 없다. 60~65%가 백인, 나머지 35~40%는 한국인이다.

 

반면 크레스킬과 인접해 있는 듀몬트와 테너플라이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잉글우드엔 흑인과 히스패닉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잉글우드 바로 옆엔 티넥이라는 큰 동네가 있는데 토요일에 이곳을 지나가다 보면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모자를 쓴 백인 남자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유대인들이다. 부유한 동네에 유대인들이 전반적으로 많긴 하지만 티넥엔 특히 유대인이 많다.

 

 

◆인종별로 진학하는 학교 달라 

 

이처럼 인종별로 사는 동네가 다르다 보니 공립학교도 인종별로 뚜렷하게 분리돼 있다. 미국은 58년 전 대법원에서 인종을 이유로 학교 입학을 불허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 인종별 학교 분리가 금지됐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든, 비슷한 인종끼리 모여 사는 것이 편해서든 여전히 자연스러운 인종별 학교 분리가 이뤄지는 셈이다.

 

전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는 뉴욕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뉴욕시 공립학교 학생들 전체의 인종 분포는 40.3%가 히스패닉, 32%가 흑인, 14.9%가 백인, 13.7%가 아시아인 등으로 통계상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학교별로 인종 분리는 두드러진다. '뉴욕타임스'가 2009년 9월부터 2010년 6월까지 1년간 뉴욕시 약 1700개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8.2%인 650개 학교가 학생들 70% 이상이 한 인종이었다. 또 뉴욕시에 있는 공립학교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학생들의 90% 이상이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다. 

 

예컨대 뉴욕시 브룩클린에 위치한 익스플로러 차터스쿨의 경우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 전교생 502명 가운데 92.7%가 흑인, 5.7%가 히스패닉, 나머지가 혼혈 인종이다. 백인이나 아시아인은 단 한명도 없다. 

 

익스플로러 차터스쿨이 위치한 학군 자체가 흑인이 많은 곳이긴 하다. 이 학군은 브룩클린 플랫부시와 크라운 하이츠 등을 포괄하는데 유치원부터 8학년까지 학생 인구 중 75%가 흑인, 13%가 히스패닉, 12%가 백인, 1%가 아시아인이다. 

 

그럼에도 백인과 아시아인 학생들이 살긴 산다. 그러면 이곳 백인과 아시아인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는 걸까. 사립학교다. 유대인의 경우 유대인 전용학교인 예시바스(yeshiva)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익스플로러 차터스쿨에 다니는 흑인 아이들은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또래 백인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익스플로러 차터스쿨 6학년에 재학 중인 아미야 영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큰 동네에서 백인 아이들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며 "백인 아이들은 생일파티를 어떻게 하는지, 우리 반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익스플로러 차터스쿨에 다니는 아이들은 인종별로 분리된 동네에서 자라 인종별로 분리된 학교에서 공부한다. 뉴욕시 공립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세계의 심장, 뉴욕시에서 자랐다고 해서 문화적 다양성에 충분히 노출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계층 하향성' 높은 흑인, 이유는 학교?

 

뉴욕시에 사는 백인들은 자녀를 주로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인종별 분리가 두드러진 공립학교 가운데 백인 학교는 거의 없다. 실제로 '뉴욕타임스'가 한 학교에서 두 학생이 우연히 만났을 때 서로 다른 인종일 확률을 조사한 결과 다른 인종을 만날 확률이 가장 낮은 100개 학교 가운데 백인 학교는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P.S.195 맨해튼 비치'가 유일했다.

 

반면 뉴욕시 사립학교는 백인 학생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 때문에 뉴욕에서 잠시 일하게 된 유럽인들은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히려 뉴욕시의 사립학교보다 좀더 다양한 인종들이 섞인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빈곤층 인구가 많은 흑인이 주로 살고 흑인이 주로 다니는 공립학교는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은 공립학교 재정의 상당부분이 재산세로 충당된다. 결과적으로 집값이 비싸 재산세가 많이 부과되는 부자 동네와 재산세가 싼 가난한 동네의 학교 재정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자라 흑인 학교에서 공부한 아이들은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더 놀라운 사실은 중산층에서 자란 흑인 아이들조차 같은 소득 수준의 백인 아이들보다 자라서 하류층으로 전락할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 바슈카르 마줌데르는 조사 결과 소득 상위 50%인 부모 밑에서 자란 흑인 아이들은 60%가 성인이 된 후 소득 하위 50%로 내려간 반면, 백인 아이들은 이 비율이 36%에 그쳤다며 "흑인들은 확실히 계층 하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시연구소(The Urban Institute)의 줄리아 아이삭스씨는 미시간대학에서 일할 때 40년 이상 자료를 수집해 연구한 결과 소득이 중간 20%(2006년 기준으로 4만8000~65만1000달러)인 가정에서 자란 백인아이 셋 중 둘은 성인이 됐을 때 소득이 부모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흑인아이들은 세명 중 한명만이 부모보다 소득이 많았다.

 

미국을 인종의 도가니라고 하지만 그 도가니 속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다. 백인과 흑인은 미국 역사를 함께 일궈 오면서도 여전히 섞이지 못하고 있다. 태어나 자라는 동네에서부터 공부하는 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어 사는 곳에 이르기까지 인종별 분리는 여전히 뚜렷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