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자' 워런 버핏. 팔순이 지났지만 그는 지난 8월31일 자신의 생일에 또다른 인생희열을 느꼈다. 매년 자선단체에 1억달러를 기부하겠다며 살아있음을 자축했다. 죽을 때까지 세계 3위인 자기 재산의 99%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기부왕'답다.

지난 18일엔 세계적 부호 11명이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 기부서약 동참을 선언했다. 인텔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 넷플릭스 CEO 리드 헤스팅즈, 프로그레시브의 피터 루이스 회장 등이 합류하면서 서약자는 2년새 92명으로 늘었다.



 
빌 게이츠는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며 보유재산의 절반을 세상에 내놓는 이 캠페인을 2010년 버핏과 함께 이끌었고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위대한 기부자'로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
이들이 주목한 건 무생물인 돈에 행복을 심어주는 '나눔의 가치'다. 21세기 나눔은 주로 기부를 통해 이뤄진다. 탐욕에 찌든 부자에게 행복을 주고 힘겹게 사는 이들의 어깨에 공생의 활력을 심는 에너지원이 바로 기부다. 
 

 
◆간극 좁히는 '기부의 진화'
국내에도 '나눔의 행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눔의 채널이 다양해지고 대중성을 띠게 되면서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 기부문화의 질적 성장은 아름다운재단의 '기부문화 트렌드 2010' 보고서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국내 기부 및 자원봉사 총규모를 금전가치로 환산한 최초 연구에서 한국은 2009년 8조4000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정부예산의 3.1%와 GDP(국내총생산) 대비 0.79%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민 1인당 평균 9만9000원을 기부했고 소수의 초고액 기부자를 포함하면 평균 17만3000원에 달했다. 2000년 이후 10년간 개인기부지수도 꾸준히 상승해 2009년 1인당 18만2000원으로 약 2배의 성장을 보였다.

현금기부 경험자가 30%를 넘어설 만큼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최근 나눔의 방식에 진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부단체 주도의 현금 위주에서 소액, 물품, 재능, 연예인, 사회적기업 등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진 데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이 가져온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두드러진 변화는 온라인 모금시장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이른바 '소셜펀딩'이 대세다. 기부의 주체는 대중으로 옮겨갔다. 일회성이 아닌 '쌍방향 멀티 모델'이 특징이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이 오픈한 소셜펀딩 '개미스폰서'(www.socialants.org)는 제안자가 기부금 목표액수와 기간을 정하면 대중이 소액 기부금을 내는 사업방식을 취한다. 재단은 제안자와 기부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으로써 프로젝트의 공익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오픈 10여일만에 시민제안 프로젝트 25개가 들어와 중국 지린성 조선인학교 국악기 보내기, 영화 <26년> 투자지원 등의 프로젝트 모금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국내엔 200여개의 소셜펀딩 사이트가 나눔의 경제를 시현하고 있다. '해피빈', '희망해' 등 인터넷 포털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온라인 기부문화의 발원지다. 기부포털 해피빈은 2009년 기업재단으로 NHN으로부터 독립해 지난 4월 기부금 300억원을 돌파했다. 자선단체들이 운영하는 블로그 '해피로그'의 사연을 읽고 클릭해 콩 1개에 100원씩 기부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연예계의 기부 열풍도 변모하고 있다. 재능기부는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 가수들이 모여 나눔 콘서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월 재능기부 자선콘서트 '나눔'을 기획·연출했던 김철한씨는 "탄탄한 음악성과 연기력을 갖춘 연예인들이 생명을 위해 빵을 나눈다는 취지에 공감해 대거 참여했다"며 "재능기부를 통한 나눔이 사회봉사를 원하는 요즘 연예인들의 새로운 코드"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일회성 기부에 그치지 않고 공익사업의 지속성을 갖기 위한 기금을 만드는 연예인들도 있다. '효리기금'을 설립한 가수 이효리는 지난해부터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난방비와 생필품 지원비 등을 기부했다. 가수 이적은 '달팽이기금'을 만들어 소년소녀가장 지원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인터뷰집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인세 7000만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던 방송인 김제동은 아름다운재단에 '환상의 짝궁기금'을 조성해 2년째 기부활동을 벌이고 있다.
 
 

◆'나눔 저변확대' 조건은?

SNS의 파급력이 소액 다수로 확산될 물꼬를 트고 있지만 나눔의 경제를 확산시키기 위한 미완의 과제도 남아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 기부, 기업의 자발적 기부문화, 개인기부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GDP 대비 기부총량 비중은 0.54%로 미국의 1.67%에 크게 뒤지는 규모다. 상위 10%대 부유층의 경우 가구소득 대비 기부의 규모에서 다른 계층과 비교했을 때 비중이 가장 낮아 이들의 기부 활성화가 과제로 떠올랐다.

이웃과 나눔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기부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의 기부참여 촉진과 더불어 중산층 이상 자산가들의 기부 활성화가 필요하다. 부유층의 나눔 모델을 개발해야 계층 간극을 좁히고 사회자본 구축에 기여할 것이란 지적이다. 유산기부, 공익신탁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미국식 모델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된다.

고액 기부자 희망자를 안내하는 컨설팅 활성화도 방법으로 꼽을 수 있다. 기부모델을 개발·안내하고 관련법과 제도의 개선점을 제시하는 민간 차원의 역할이 나눔의 선순환 구조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법인 최초의 기부컨설팅은 아름다운재단이 대표적이다. 2000년 기부컨설팅센터B를 만들어 맞춤형 기금 사업을 시작한 이래 10년 넘게 150여개의 추모·유산·가족기금을 조성하는데 힘썼다. 상속 플랜, 유산나눔, 부동산, 주식 등 전문성과 절차가 필요한 특별자산 기부나 금융권 PB고객 대상의 독립재단 설립·운영을 컨설팅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를 구성했다. 2007년 이후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해 1억원 이상 기부금을 완납 또는 약정한 회원이 150여명으로 불었다.

아름다운재단의 권연재 경영기획국 간사는 "고액자산가들이 늘어나는 것이 부의 흐름이지만 외국과 견줄 때 국내엔 부유층이나 기업의 기부시스템이 미비해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공익재단의 컨설팅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과 기부문화 활성화를 촉진하는 가이드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모금액이 1000만원 이상이면 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하는 기부금품법과 관련 세제도 SNS를 접목한 최근의 새로운 기부방식 등에 맞춰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7년 이후 1900여개로 늘어난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과 한국의 '아쇼카 펠로'를 배출할 사회적기업가 양성 프로그램 개발도 기부문화 활성화 방안의 한 축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