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곳 중 하나가 춘천이다. 기차여행의 낭만과 젊은 시절 추억이 남아 있는 춘천으로 떠나는 가을에 소양호와 한적한 계곡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춘선 기차가 사라지고 전철이 다니면서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경춘선 기차여행의 낭만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itx라는 열차를 용산역과 청량리역에서 탈 수 있는데 옛날 기차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들리던 기차바퀴 소리에 차창 멀리 지나는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청각과 시각을 통해 여행자의 마음은 아스라한 낭만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기차여행의 낭만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철길 위에서는 들을 수 없는 기차바퀴 소리마저 추억이 돼 버린 것이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청평사 선착장을 오가는 유람선
◆물길 건너 도착한 청평사 계곡
춘천역에 도착한 우리는 역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소양호 가는 버스를 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11번, 12번, 150번 버스가 소양호 종점까지 간다. 소양호 종점인 댐 위에까지 가서 내렸다.
시원하게 펼쳐진 소양호와 그 주변 산줄기들의 풍경에 마음이 열린다. 소양호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즐비하다. 소라, 옥수수, 어묵, 번데기 등 먹을 것들이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을 홀린다. 번데기 한 컵으로 유혹을 달래본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청평사 선착장으로 가는 통통배를 탔다. 소양호의 물을 가르며 목적지인 청평사로 가는 짧은 뱃길에도 여행의 맛이 산다.
통통배는 느리게 물을 갈랐다. 주변 풍경도 여유롭게 스쳐간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배는 청평사 선착장에 도착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소양호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물 위를 달리는 기분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청평사로 가는 길 초입은 식당거리였다. 호젓한 계곡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그 거리를 지나면서 불평 섞인 말을 몇 마디씩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있다가 내려올 때 막걸리 한 잔 해야겠다며 웃는다.
상가 거리를 벗어나면서 길은 계곡과 가까워진다. 길 바로 옆이 계곡이다. 마지막 상가이자 매표소 건물을 지나면서 민가는 없어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이제부터 민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고 숲이고 길이다.
청평사 계곡에는 상사뱀에 얽인 전설이 내려온다
◆마음 사로잡는 구성폭포 시원한 물줄기
계곡 너럭바위 위로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 흐른다. 사람들 몇몇은 계곡으로 들어가 바위 위에 앉아 벌써부터 휴식이다.
길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엄쉬엄 걷는 게 옳다. 그렇게 걸으면서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 얹으면 그것이 휴식이고 안식 아니겠는가.
계곡과 길은 계속해서 그렇게 나란히 이어진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바로 옆 계곡으로 들어가 앉으면 그만이다. 맑고 푸른 물줄기와 숲의 정기가 온 몸을 감싼다.
청평사로 가는 계곡 길목에는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중국 당나라 때 공주를 사모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일반 백성과 공주라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청년은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상사병으로 죽게 됐다. 그 청년은 죽어서 뱀으로 환생해서 사랑했던 공주를 찾아가 공주의 몸을 감아버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의원을 불러 뱀을 없애려 했지만 실패했다. 점점 쇠약해가는 공주를 보던 왕은 이곳 청평사에 공주를 보내 요양하게 했다. 청평사로 가는 길에 공주는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는데 종소리가 들려오자 공주는 뱀에게 “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으니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오고자 합니다. 잠시 제 몸에서 내려가 주세요”라며 간청했더니 상사뱀은 공주의 몸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절에 도착한 공주는 밥을 얻기 전에 법당에 있었는데 밥을 얻어오겠다던 공주가 오지 않자 상사뱀은 공주가 도망간 것 아닐까 생각해서 절로 올라갔다. 공주를 찾으러 절문(회전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벼락이 내리쳐 상사뱀이 죽었다. 절에서 나온 공주는 상사뱀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상사뱀을 묻어주고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당나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상사뱀의 전설에 내려오는 공주의 동상이 계곡에 있다.
전설을 뒤로하고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너럭바위 위를 흐르는 맑은 물가에 쉬며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인 뒤에 또 걸었다.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니 폭포가 나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두 개다.
그 폭포 바로 위에 더 큰 폭포가 나왔다.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고 폭포 아래 웅덩이에 푸른 물이 고였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마음이 맑아진다.
그 아래 앉아 눈을 감았다. 폭포소리가 더 시원하게 들린다. 깨끗한 기운이 몸을 씻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앉아 쉬는 게 행복했다.
아래 폭포는 ‘쌍폭’, 위 폭포는 ‘구송(구성)폭포’라고 부른다. 옛 문헌에 따르면 이 두 개의 폭포를 일컬어 ‘이단폭포’ ‘형제폭포’ ‘쌍폭’ 등으로 불렀다. 다산 정약용은 위 폭포를 ‘구송정폭포’ 아래 폭포를 ‘경운대폭포’로 불렀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층을 이루어 떨어지는 두 개의 폭포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폭포를 지나면 청평사가 나온다.
청평사 회전문. 보물 164호
◆작지만 단아한 절, 청평사
절이 보인다. 절로 올라가는 계단 전에 약수물이 있다. 약수 한 모금에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쉬며 걸어온 길을 생각한다.
깊은 산 속은 아니지만 숲이 깊어 보이고 거대하지는 않지만 폭포까지 볼 수 있는 청평사 계곡의 자연은 어떻게 보면 쉽게 다가가서 깊은 숲의 향기를 누구나 마음껏 누리고 갈 수 있는 자비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기암절벽 수직단애의 아찔함보다, 굽이치는 시퍼런 물줄기 우렁찬 폭포수의 경외심보다, 누구나 발 담그고 놀 수 있는 친구 같은 자연, 그 속에 청평사는 있었다.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 때)에 영현선사가 세운 절이다. 당시에는 백암선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가 1068년(문종 22년) 이의라는 사람이 보현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중건했다. 이후 이자현이라는 사람이 1089년에 또 다시 중건하면서 이름을 문수원이라 했다. 지금의 청평사라는 이름은 조선 명종 대 보우선사가 중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한때는 이곳에 국보 제115호로 지정된 극락전과 대감국사 탄연이 쓴 문수원기 등 유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에 나오는 회전문은 보물 제164호로 지정돼 지금도 남아 있다. 회전문은 청평사의 중문에 해당되며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중건할 때 다시 지었다. ‘청평사지’라는 문헌에는 남문으로 기록돼 있다. 이곳을 거쳐 간 스님 중에는 나옹화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이 은거하기도 했다.
절의 내력을 알고 나니 한갓진 발걸음에 무게가 실린다. 절로 들어가기 전에 계단 위로 올라서니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절의 일주문인양 우뚝 섰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절은 작지만 단아했다. 절을 돌아보는 사이 햇살이 기운다. 소양호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를 타려면 지금쯤 돌아가야 한다. 멀지 않은 길 여유 있게 걸으며 도착한 소양호에 금가루 같은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강촌삼거리 -팔미삼거리- 학곡사거리- 구봉산- 감정삼거리 - 46번국도 - 강변로 - 세월교 - 소양댐
*춘천IC -구봉산- 감정삼거리 - 46번국도 - 강변로 - 세월교 - 소양댐
대중교통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전철을 타고 상봉역에서 내려서 춘천역 가는 경춘선 전철로 갈아탄다. 용산역에서 춘천역까지 운행하는 itx 열차도 있다.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1시간마다 운행한다. 청량리역에서도 탈 수 있다. 청량리역 출발 막차는 저녁 7시45분이다.
현지교통
춘천역에서 내려서 11번, 12번, 150번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댐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숙박>
청평사계곡에 산장(민박)이 있으나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춘천시내로 다시 나와야 한다.
<음식>
춘천 시내 명동 닭갈비 골목 닭갈비. 소양댐 아래 마을에 막국수 하는 집이 몇 곳 있다.
<요금정보>
*소양댐~청평사 배 왕복요금 어른 6000원. 어린이(초등학생까지) 4000원.
*청평사 관람요금 800~2000원.
소양호 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 오전 9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배가 출발한다. 오후 4시 배를 타야 청평사 돌아보고 청평사에서 소양호 선착장으로 나오는 마지막 배(오후 5시30분)를 탈 수 있다. 문의=소양호선착장 : 033-242-245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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