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1일 체인스토어협회와 대형유통업체에서 일간지에 게재한 전면광고는 사뭇 비장했다. 대형유통업체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이 모여 지난 11월15일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출범시켰지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즉각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의무휴업 '죽기살기 반대'… 속사정 어떻길래
'500만 맞벌이부부의 쇼핑 기회를 박탈한다', '농어민과 입점소상공인의 5조원에 달하는 피해가 예상된다'. 대형마트들이 의무휴업 확대 등 규제강화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다.
체인스토어협회는 일간지 전면광고를 통한 호소문의 마지막에 '대형유통과 거래하는 농어민, 중소기업 임직원 및 가족 280만명 일동/ 대형유통과 거래하는 임대영세소상인 임직원 및 가족 13만명 일동'이라고 명시했다.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정부와 소상공인들의 목소리에 "규제강화로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를 내세워 맞불을 당긴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전략은 주효했다. 일주일여의 논란 끝에 11월22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상정이 무산됐다.
이처럼 '납품업체와 소비자들의 피해'를 표면적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대형마트들이 사력을 다해 규제강화를 저지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의 매출 하락세가 급격하게 두드러진데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를 맞으며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어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올해 1·2분기는 전년동기 대비 거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나마도 강제휴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 만큼 타격이 크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업계 죽이기'나 다름없다는 항변이다.
이 같은 대형유통업체들의 하소연은 최근의 매출동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11월21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10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매출이 전년 동월보다 6.6% 감소했다. ▲식품 -9.2% ▲의류 -6.9% ▲가전·문화 -6.3% ▲가정생활 -3.4% ▲스포츠 -5.5%로 주력 카테고리를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품목에서 매출이 급감한 것이다. 오랜 경기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올 2월부터 줄곧 하락세가 커지는 추세다. 지난 9월 추석 명절 효과로 0.2% 반짝 상승세를 보이긴 했지만 그동안의 매출 하락 흐름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신규 출점 등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인 탓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대형마트 점포수가 200개를 돌파하면서 포화상태에 다다랐다고 분석했다. 현재 대형마트 3사의 국내 점포수는 이마트 135개, 홈플러스 123개, 롯데마트 91개로 349개에 달한다.
따라서 대형유통업체들로서는 신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졌다. 이에 해외진출 등 신규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신통치 않다. 업체 입장에서는 부진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시기에 의무휴업 등으로 매출 하락이 지속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_류승희 기자
◆의무휴업 매출 타격… 반값 판매로 극복?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형유통업체들은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분석에도 여전히 대형유통업체들의 점포 확장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각 업체마다 5~9개 정도의 신규 출점이 예정돼 있다.
당장 유통산업발전협의회가 출범한 11월15일 홈플러스의 '꼼수 출점'이 빈축을 샀다. "신규 출점을 자제할 것"이라는 대형유통업체의 약속과 달리 홈플러스가 경기도 오산시에 점포 개설 등록을 신청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문제는 점포 등록을 신청한 날짜. 전국상인협회 측은 "양측이 유통산업발전협의회의 골자를 마련한 당일에 홈플러스가 뒤로는 신규 출점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자 홈플러스 관계자는 "문제가 된 점포들은 오래 전부터 출점을 준비했던 곳들로 이번 협약에서 거론된 신규 출점 자제와는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상생정신을 바탕으로 유통산업발전협의회와 합의를 거쳐 오픈할 것"이라고 일단락 지었다.
홈플러스 외 다른 업체들은 "홈플러스의 이번 출점 논란을 대형마트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서둘러 선긋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매출 타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대형마트들의 꼼수 논란은 비단 홈플러스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대다수 대형마트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쇼핑센터 또는 복합쇼핑몰 내에 입점하거나 창고형 매장을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반값 시리즈' 등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도 두드러진다. 고객정보를 활용해 '일요일 정상영업 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파격적인 할인혜택을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며, 반값 품목 확대에도 거침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도 '반값 컴퓨터', '반값 김장 배추'에 이어 신세계 이마트가 '반값 안경'을 판매해 대한안경사협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더욱이 이 같은 '특판' 혹은 '반값 행사' 등이 잦아지면서 미끼 상술만 강화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파격 할인 등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데 비해 대부분의 상품이 한정판매 등으로 정작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홍보 전단지에도 정확한 판매수량이 기재된 경우는 드물다. 이 같은 상황은 시장조사전문업체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지난 4월 만 3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형마트 이용 및 초저가 제품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결과 초저가 제품을 구입하려다 조기 품절로 사지 못한 소비자가 4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반값 시리즈 등은 고객의 혜택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다"며 "다만 제품의 수량에 한계가 있어 더 많은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대형유통업체들은 그동안 납품업체들에게 안정적인 유통경로와 소비자들의 할인혜택 강화에 많은 기여를 해왔음에도 정치권이 대결과 갈등 구조를 조장하고 있다"며 "향후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통해 소상공인들과 지속적으로 상호발전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