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해도 대부분 일용직 전전… 정부 차원 특단책 시급
 
# "한국인으로 귀화한지 벌써 13년째입니다. 세금도 내고 있고 투표권도 있지만 취업만큼은 여전히 외국인 대접을 받다보니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유령이 된 듯합니다." (파키스탄 출신 귀화인 김아스가칸)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다문화가정 인구는 2012년 현재 총 22만명으로 집계됐다. 또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외국인까지 합하면 최대 100만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OECD 국가 중 한국 거주 외국인 증가율은 미국, 일본, 중국, 이탈리아 등과 비교할때 매년 가파른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국내에서 출생한 다문화가정 학생수는 올해 기준 4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거주 인구 10명 중 2명은 외국인이며, 학생 10명 중 1명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한국 내 다문화가정은 이미 우리사회의 한 구성원임에 분명하다. 이렇듯 한국 내 다문화가정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과 편견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귀화 이주민들 중 절대적 다수가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가족부양을 위해 일용직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 찾아 한국인 된 파키스탄 아빠의 '눈물'
 
당당한 다문화가정을 위해 매주 공연과 한글교사 봉사활동를 하고 있는 김은미씨(40)는 지난 2000년 파키스탄인 남편과 결혼한 13년차 다문화가정 주부다. 젊은 시절 농구부 코치를 지냈다는 김씨는 우연히 여행을 떠난 파키스탄에서 지금의 남편 '김아스가칸씨(40)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씨는 "낯선 여행지에서 가방을 잃었는데 남편이 땀을 흘리며 찾아줬다"며 "선한 눈빛에 밝은 미소가 너무 좋아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친정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성공한 김씨 부부는 김아스가칸씨가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사랑 하나만 보고 파키스탄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김아스가칸씨의 가슴은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짧은 기대는 이내 절망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국보다 후진국이라고 평가받는 아시아권 이방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차갑기만 했다. 김아스가칸씨는 "지금은 그나마 아내와 팔짱끼고 돌아다닐 수 있지만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거리를 다니면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쳐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한국인으로 귀화했음에도 공공기관에서 불법체류자 대하듯이 반말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김아스가칸씨는 매주 2회 정도 서울 홍대 인근에서 케밥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유명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영어, 인도어, 네팔어, 한국어 등을 구사할만큼 인재로 통하지만 한국에서는 변변찮은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어려운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이다.
 
귀화했으니 한국인인데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외국인이면 급여를 적게 줘도 되는데 귀화한 외국인이다 보니 한국인과 동등한 급여를 줘야 하기때문에 부담된다고 하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취업'의 높은 장벽…귀화 이주민 70% 이상 일용직

아스가칸씨는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가정도 있지만 한국에서 이주민이 할 일은 없는 것 같다"며 "기술이 있지만 외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국사회의 굴레에 갇혀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아스가칸씨의 말처럼 한국인과 결혼하고 귀화해 제2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 한국 사회에서의 취업장벽은 높을 수밖에 없다. 대다수 업체들이 귀화 이주민들을 채용할 경우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공단 내 주물공장을 운영하는 A 대표는 "취업 외국인을 고용하면 월 80만원, 무보험이면 가능하지만 귀화 외국인을 채용하게 되면 한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회사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왕이면 인건비가 적은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한국남성과 결혼해 귀화한 이주여성들의 취업률은 이주남성보다 더 열악하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내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대표적인 직업군을 살펴보면 ▲생산직 ▲식당 보조 ▲대중 사우나 ▲숙박 등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대다수가 유흥업소를 전전하고 있다.

이주여성 L씨는 "이주여성 대다수가 정규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 많지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보조 및 생산직 근로자가 전부"라며 "자신의 전공을 되살려 일하고 싶어도 자신들을 받아 줄 회사를 찾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귀화 이주민 취업대책 마련 시급


국내 귀화 이주민들의 취업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내 거주 다문화가정 이주민 중 80% 이상은 최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고급인력으로 인정받았던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취업 대안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도 이를 위해 '다문화가정 지원정책법'을 개정하고 국내 거주 다문화가정 지원책을 연일 내놓고 있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선출된 필리핀 이주여성 출신 국회의원은 국내 이주여성들을 위한 보호법과 현실적인 취업을 위해 개정법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교육과학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사회에서 다수를 이루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을 위해 소득과 재산규모에 상관없이 육아 교육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 22만명에 달하는 귀화 이주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다문화가정 지원책이 '수박 걷핥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80%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지만 현실은 비관적이어서 귀화 이주민들이 자신의 능력을 되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취업방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인천시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복지사는 "비록 한국인과 결혼했다 하더라도 남편과 아내 어느 한쪽이 가정을 이끌만한 능력이 부족한 사례가 많다"면서 "한국말에 서툰 이주여성 또는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대다수 업체들이 귀화 이주민 채용을 꺼리고 있어 가계를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희망하는 이주민들이 언어 장벽과 취업불안으로 고민하다 결국 가정이 파탄나거나 여성의 경우 부득이 유흥업소까지 전전하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면서 "센터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취업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