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내부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승진이 남다르다. 보험업계는 그동안 유럽발 악재와 소비부진 등으로 영업환경이 평탄치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2월 초까지만 해도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 부회장이 삼성생명 사장 취임 1년 만에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하는 놀라운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박 부회장의 승진은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사실 사장단 인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심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면서 불안감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눔·소통 경영으로 고객감동 실천
"앞으로 수업료는 절대 없다."
2006년 박근희 부회장이 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삼성전자 중국총괄 사장 겸임)에 재임 중일 때 한 말이다. 그는 삼성 중국본사 사장일 때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삼성은 한국의 대표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중국에서도 사업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박 부회장이 삼성전자 중국사업 총괄을 맡은 직후인 2005년 100만대에 그쳤던 중국지역 노트북 생산은 2009년에는 600만대로 6배 뛰어오르는 등 괄목할만한 실적 개선이 이뤄졌다. 생산 라인을 셀(cell) 방식으로 바꾸고 부품 조달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혁신을 지속적으로 단행한 결과였다.
이는 박 부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대외평가보다는 자신의 평가에 더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만족하지 않으면 대외평가가 아무리 높더라도 스스로 시행착오라고 느끼며 개선한다. 또한 회사 내부의 평가보다 고객의 평가를 최우선으로 둔다. 고객이 만족하지 않으면 자신도 만족할 수 없다는 기본철학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초점을 두는 것은 고객감동이다. 삼성 중국본사 사장을 역임할 당시 그는 13억 중국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면 회사는 망한다는 기본철학을 잊지 않았다. 이를 통해 고객 사랑과 나눔 경영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으며 이는 지금까지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경영도 빼놓을 수 없는 박근희식 경영이다. 조직인으로서 원칙을 중요시하고 냉철하리만큼 철두철미하다. 요령이나 적당수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 물론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현장경험도 풍부해야 한다. 영업환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많이 아느냐에 따라 경영방식은 180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박 부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장 CEO'라는 별칭을 얻었다. 자신이 직접보고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기업의 목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박 부회장은 "물이 흐르는 듯한 원활한 소통은 조직을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자 시너지 창출의 출발점"이라며 "본사와 현장, 부서와 부서, 개인과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지방대 신화 새롭게 써낸 박근희 부회장
박 부회장은 청주상고(현 대성고)와 청주대를 졸업했다. 이른바 상고를 나온 지방대 출신이 그의 이력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지방대가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박 부회장이 삼성맨이 된 시기는 대학 졸업 후인 1978년이다. 당시 그는 삼성전관(현 삼성SDI) 총무·경리과에 입사했다. 2004년 삼성캐피탈 사장으로 부임하기까지 삼성전관과 삼성비서실, 삼성구조조정본부 등에서 재무와 경영 진단 등을 담당했다. 한 분야를 맡으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 덕에 사내에서 '일벌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 삼성캐피탈, 삼성카드와 삼성그룹 중국본사 CEO를 맡으며 본격적인 최고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그의 진가가 발휘된 시기는 2003년. 당시만 해도 매년 1조원 가까운 이익을 내던 삼성카드를 감사한 뒤 "그룹 창설 이후 최대위기가 올 수 있다"는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라 그룹 차원의 사전조치가 이뤄졌고 삼성카드는 이후 터진 '카드사태' 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2005년부터 6년간 중국본사 사장을 맡은 그는 중국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휴대전화와 LED TV의 중국 내 판매 1위 달성을 주도하는 등 성공적인 중국시장 개척을 일궈낸 것.
이후 2010년 귀국해 삼성생명 보험담당 사장으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2011년 6월에는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후 사업전반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추진력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단행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다. 삼성생명 대표이사를 맡은 후 그는 '현장경영'에 집중했다. 대표이사 취임 후 거의 모든 지점과 영업소를 직접 방문했다.
현장경영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박 부회장은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치고 방카슈랑스와 독립법인 대리점 등 비전속 판매채널에 대한 성장도 적극 도모했다. 하반기에는 은퇴설계 관련 포털사이트를 오픈하고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가문관리 컨설팅서비스 등을 실시했다.
삼성생명 부회장직에 올랐지만 그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우선 시급한 일은 삼성생명이 2020년에 자산 500조원의 글로벌금융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다. 삼성생명을 세계 15위 생보사로 성장시키고 차근차근 전세계 보험업계를 선도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