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은닉재산 총 888조원… 계좌 미신고자 형사처벌 추진
 
지난 2월12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에 가려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국세청으로서는 대단히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가 있었다. 한국의 오나시스로 불리는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1심 재판결과였다. 권혁 회장은 무일푼으로 선박사업을 시작해 수조원대의 재산을 가진 기업으로 일궈 '선박왕'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탈세왕'이라는 칭호를 얻고 말았다.
국내 거주자인 경우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모든 소득에 대해 국내세법에 의거, 세금을 내야 하지만 비거주자는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권 회장은 이러한 법을 악용해 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비거주자로 위장해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4101억원을 추징당했고 그중 악의적인 조세포탈금액 2200억원에 대해서는 조세포탈범으로 검찰에 고발 당했다. 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그 혐의를 인정해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을 선고했고 권 회장은 법정구속됐다.

이에 앞서 역외탈세 1호로 검찰에 고발돼 재판을 받았던 완구왕 박종완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 회장의 경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구리왕 차용규씨 역시 국세청은 16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려고 했지만 세금을 고지하기 전 단계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완구왕과 구리왕에 대한 세금추징이 무산됨에 따라 국세청은 숨은 세원 찾기의 핵심내용 중 역외탈세 방지를 위한 행정에 적신호가 켜졌었다. 하지만 이번 선박왕에 대한 1심 결과로 인해 앞으로 국세청이 역외탈세와의 전쟁에서 많은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세금 회피 목적 해외 은닉재산 세계 3위

지난해 7월21일 영국의 더 옵서버지는 '조세정의 네트워크'라는 보고서를 인용해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은닉한 재산의 국가별 규모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다. 또 한국부자들이 해외에 은닉한 재산규모는 888조원에 이른다. 이들 자금은 스위스나 케이만군도 등 조세회피지역에 은닉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역사상 최다인 1억400만달러(약 1170억원)의 탈세제보 포상금을 지급한 사실이 보도돼 화제가 됐다. 스위스의 UBS은행에 재직하는 버켄펠드라는 사람이 미국인들이 스위스의 UBS은행을 통해 만든 비밀계좌의 명단과 탈세수법을 미국의 국세청인 IRS에 제보했고, IRS는 이를 토대로 5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세금과 과징금을 추징했다는 내용이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보장에 대한 신뢰는 '검은돈'의 은닉처로써 각광을 받아왔지만, 전세계 각국의 재정위기는 부자들이 재산을 해외에 은닉하는 것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게 했고 이에 따라 대표적인 재산 은닉처인 스위스 은행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힘이 있는 세계 각국들이 공조해 스위스 은행을 압박하자 결국 스위스 은행은 비밀금고의 빗장을 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7월 스위스와 체결한 조세정보협정이 발효되면서 탈세혐의자의 금융정보를 제공받게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탈세혐의자의 비밀계좌번호를 몰라도 인적사항만 제시하면 그 사람에 대한 금융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과 스위스 정부는 더 나아가 탈세혐의자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탈세상품으로 판명된 스위스금융계좌나 금융상품에 가입한 한국 거주자의 모든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그룹리퀘스트가 가능하도록 협의 중이라고 하니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자금을 은닉한 사람들은 밤잠을 못 자고 고민에 빠져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 신고포상금 등 역외탈세 적발에 총력

역외탈세란 세금이 없거나 적고 정보제공이 쉽지 않은 조세회피지역 또는 국가에 회사를 설립하거나 주소지를 옮겨놓는 방법으로 탈세하거나, 해외법인과 거래하면서 거래금액을 부풀리거나 줄여서 거래한 후 그 자금을 은닉하는 행위, 해외계좌를 이용한 자금세탁 및 탈세 또는 환치기를 통한 해외로의 자금이전 등을 통한 탈세행위를 말한다.

국세청과 관세청은 우리나라의 기업과 자산가 사이에서도 역외탈세가 만연하고 있다고 판단, 작심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역외탈세는 단순한 탈세행위가 아니라 국부유출행위이자 반사회적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적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국세청은 몇년 전부터 역외탈세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회의 막강한 지원 속에 예산을 확보한 후 조직을 갖췄다. 2013년 역외탈세를 위한 예산은 79억원으로 이중 지출내용이나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로 45억6000만원이 배정됐다. 특수활동비는 해외정보원으로부터 탈세혐의자의 탈세정보를 제공받고 지불하는 보상금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특히 홍콩에서 비밀정보요원으로부터 탈세정보를 돈을 주고 제공받아 200억원을 추징한 사례가 있어 앞으로 특수활동비를 활용한 탈세정보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0년부터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를 운영하면서 해외계좌의 내용을 신고토록 하고 있으며 신고하지 않는 경우엔 막중한 과태료를 부과하고 미신고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역외탈세 방지에 온힘을 쏟고 있다.

현재는 해외계좌를 신고하지 않으면 미신고금액의 최대 10%를 매년 과태료로 부과한다. 하지만 앞으로 벌금을 부과하고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자를 국세청에 제보할 경우 지급되는 신고포상금도 최대 10억원까지 지급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국세행정의 한계를 특수활동비 또는 포상금제도를 이용해 보완키로 한 것이다.

국세청은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2009년에 1801억원을 추징하는데 그쳤지만 2010년 5019억원, 2011년 9637억원을 추징하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 특히 국세청은 역외탈세에 대한 조사 경험이 축적돼 있는 만큼 일반기업의 세무조사 시에도 국제거래에 대한 조사를 그전보다 더욱 심층적으로 실시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린 국세청으로서는 역외탈세와의 전쟁에서 물러설 수 없는 형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