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구성요건 너무 포괄적… 법개정 놓고 찬반 '팽팽'

대기업 오너들이 잇따라 배임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서면서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과거처럼 경영상 판단에 따른 손실을 범죄로 보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이 여전히 팽팽하기 때문인데, 관심은 최근 들어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도 배임죄 적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법 개정 움직임도 인다.

현행법상 대표적인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355조 2항 이하)로 규정돼 있다.

최근 김승연 한화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이 '죄목'으로 걸려들었고 예전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박용성 두산 전 회장 등도 같은 명목으로 철퇴를 맞았다.


◆배임죄 무죄율, 형사 사건보다 7.1배↑

사실 배임죄의 적용을 놓고 재계가 반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정에 선 재벌총수 대부분이 조세 포탈 등의 일부 혐의를 제외하면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때마다 배임죄의 적용범위를 어디까지 둬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는 점.
특히 재벌 총수들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구조조정 등의 행위도 배임죄로 해석돼 처벌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배임혐의로 법정 구속된 김승연 회장만 해도 한화그룹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계열사를 지원한 것이 과연 배임에 해당되느냐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다. 당연히 기업에서는 "계열사를 살리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법원의 판단에서 이 부분은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현행법상 배임죄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너무 포괄적이라는데 있다. 배임죄 구성요소 중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는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껏 주로 기업인에게 적용된 배임사건의 무죄율이 전체 형사범죄의 7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손해액 5억원 이상인 경우 적용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상 배임사건 선고자 379명 중 59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1심 무죄율이 15.6%에 달하는 수치다. 손해액이 5억원 미만인 형법상 배임사건 역시 1심 선고자 1492명 중 124명이 무죄선고를 받아 8.3%의 무죄율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형사사건의 평균 무죄율 2.2%와 비교할 때 특경법상 배임사건은 무죄율이 7.1배 더 많고 형법상 배임사건도 3.8배 높다는 증거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사건의 무죄율이 높은 것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포괄적이다 보니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하기 위해 법규를 무리하게 확대해석해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며 "단순한 경영상 판단 실패인지 위법행위에 의한 것인지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데 업무상 배임이라는 개념과 구성요건이 너무 넓고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독일·미국선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

그렇다면 해외에선 기업인 배임죄에 대한 적용을 어떤 기준에서 하고 있을까.

구미 선진국에서 배임죄는 반드시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된다. 신중하고 성실하게 경영상의 결정을 내렸다면 사후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나더라도 경영상 판단이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배임죄를 도입한 해외 국가들 상당수가 배임죄의 법리 적용에 있어 엄격히 제한을 두고 있다. 미국과 독일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합리적 경영판단이라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경영진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사회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신의성실에 따라 행동했다면 회사에 대한 최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판례가 있는데, 이는 배임혐의에 대해 경영자의 경영상 결정과 판단을 일정부분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진 사이 최근 정치권에서는 적극적인 법 개정안 움직임이 일었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기업인의 경영판단 결과에 따른 책임 추궁의 요건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

이 의원은 지난 3월27일 개정안을 통해 상법 282조 2항에 "이사가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경영상 결정을 내리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했다.

그는 "기업인의 경영활동과 관련한 책임 추궁에 있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해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는 조건(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배임죄 개정안 발의…야당·시민단체 "우려스럽다"

이 의원의 발의에 앞서 학계에서도 배임죄와 관련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속속 나왔다.

신동운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배임죄에 대해 두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배임죄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넓어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형기준이 대단히 엄격해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라며 현행법 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선 이 같은 배임죄 개정안 움직임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펴고 있다.

이춘석(민주통합당) 국회 법사위 간사는 "우리나라의 기업 이사회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영판단이라는 이유로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배임에 대해서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백운광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도 "독일의 경영판단 원칙은 노조, 은행, 회사경영진 등으로 구성된 공동이사회를 전제로 생겨난 규정이어서 이사회가 오너일가의 거수기로 전락한 한국현실에는 맞지 않는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유례없는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 사태로부터 재점화된 기업인 배임죄 논란. 재계는 물론 정치권·법조계·학계에까지 논란의 여파가 끊이지 않는 만큼 민주적 절차를 거친 '실용적인 법 조항' 개정 논의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