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물러난 겁니다." 보험업계에서만 40여년을 종사한 신은철 전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의 갑작스런 퇴임 이유를 묻자 한화생명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젊은 시절부터 한길만을 걸어왔던 보험업계의 '큰 형님'은 떠날 때도 후배들을 생각했다.
한화생명에 있어 신은철 전 부회장은 '변화'를 주문한 전문경영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부실기업을 업계 부동의 2위로 만들었고 사명변경을 통해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데다 글로벌 생명보험사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이제 후배들은 그가 뿌려놓은 씨앗을 잘 가꿔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 됐다.
◆위기에서 등판한 '구원투수'
삼성생명에 입사하면서 보험업에 몸을 담은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03년 대한생명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적을 옮긴 당시 대한생명은 그야말로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한화그룹이 63빌딩과 함께 인수한 대한생명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됐다.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며 교보생명에 추월당해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렸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된 신 전 부회장은 2위 탈환에 주력했다. 그가 회사를 옮긴 2003년 대한생명의 총자산은 29조6260억원, 교보생명은 29조9318억원이었다. 하지만 1년 후인 2004년에는 대한생명이 총자산 37조1748억원으로 교보생명(35조4179억원)을 앞질렀다.
이후에도 한화생명의 승승장구는 이어졌고 2012년 12월 현재 총자산은 74조8862억원으로 국내 생보업계 부동의 2위를 달리고 있다.
신은철 전 부회장이 한화생명에서 이룬 또 하나의 성과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이다. 그는 당시 대한생명을 삼성생명보다 먼저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지난 2010년 3월17일 코스피시장에 정식으로 상장된 대한생명은 공모가 8200원보다 높은 8700원에 시초가를 형성했다.
대한생명은 상장 당일 거래량만 6544만주에 달하는 흥행을 이뤘다. 당시 기준으로 시가총액 7조6864억원으로 시총순위 30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글로벌 생보사로는 27위, 아시아 생보사로는 7위였다.
상장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신 전 부회장은 "상장을 통한 자금유입은 고객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서비스 향상과 판매채널 강화, 신상품 개발에 나설 것이며 건강보험과 연금보험 등 신상품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말해 상장이익을 고객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사명 바꾸고 글로벌보험사 '초석' 마련
신은철 전 부회장은 또 옛 대한생명을 현재의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진출 등 글로벌보험사로 성공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한화생명은 2012년 10월9일 대한생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대한생명이 한화그룹의 식구가 된 이후 10년만의 일이다.
신 전 부회장은 사명을 변경할 당시 고민이 많았다. 고객에게 익숙한 '대한생명'이라는 이름과 국내 최초 생보사라는 이미지를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 전 부회장은 과감하게 사명을 바꾸고 '한화 계열사'라는 이미지를 선택했다.
한화생명은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등으로 이어지는 '한화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등 사명변경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생명은 사명 변경 직후,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중국 저장성의 국제무역그룹과 합작으로 '중한인수보험유한공사'(中韓人壽保險公司)를 출범시킨 것.
중한인수는 국제무역그룹과 50대 50으로 출자한 회사로, 일상 경영권은 보험업의 전문성을 갖춘 한화생명이 행사한다. 중국은 현재 글로벌생보사로 발돋움하려는 한화생명의 핵심시장이다.
신 전 부회장은 개업식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시장으로 성장할 중국은 한화생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중국을 발판으로 아시아 신흥시장에서의 해외영업 기회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전략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선택했으며 이를 위해 중한인수 직원들에게 다양한 '성공 DNA'를 전수하고 있다. 지난 2월27일에는 한화생명 보험왕 출신인 정미경 명예전무가 임직원과 보험설계사 400여명을 대상으로 영업 노하우를 설명하기도 했다. 정 명예전무는 보험영업의 성공은 '정도영업'이 핵심이라는 성공 스토리를 전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한화생명은 중한인수 직원들을 국내로 불러 국내 본사 연수를 시행하기도 했다. 특히 운영·영업·IT·상품부문의 핵심인력들을 초빙해 연수시키면서 발전된 한국 및 한화생명의 보험업을 몸으로 체득하게 했다.
한편 한화생명은 신 전 대표이사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차남규·신은철 투톱 체제에서 차남규 대표이사 사장 단독체제로 전환됐다. 이와 관련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생명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신 전 부회장은 더 발전적인 회사를 만들어 달라는 숙제를 후배들에게 안기고 떠났다"고 평가했다.
☞ 프로필
1947년 2월10일 출생/삼선고등학교 졸업/한국외국어대 독어학과 학사/1988년 삼성생명 투융자사업부장/1991년 인사담당임원/1995년 금융부문 전략기획실장/1997년 인력개발원 부원장/2003년 대한생명 대표이사 사장/2005년 대한생명 대표이사 부회장/2012년 한화생명보험 대표이사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