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1일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각. 서울역 앞에는 세종시로 향하는 통근버스에 몸을 싣기 위해 많은 공무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로 가는 시간만 약 1시간40분. 사는 지역에 따라서 짧게는 4시간부터 길게는 6시간까지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공무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대놓고 힘든 내색을 하지도 못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출퇴근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어서다. 이날은 마침 여름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짜증 섞인 그들의 표정은 좌석에 앉은 뒤 지친 눈을 감고서야 사그라졌다.
◆출퇴근하는 데만 5시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이틀 연속 내린 비 때문이었는지 현장취재 당일과 다음 날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고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1000여명이 집단 지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일부 부처는 회의시간을 늦춰 진행했고 추후 일정도 차례로 연기됐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통근버스는 총 49대다. 특히 월요일 출근길과 금요일 퇴근길은 대부분 만석이다. 다행히 이번 사고는 통근버스를 피해갔지만 만약 통근버스에서 사고가 났다면 수많은 공무원들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고, 이는 곧 엄청난 행정공백으로 이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현장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의 사정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세종청사 주변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매순간 위험에 노출돼 있다. 도로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전거 출퇴근은 더욱 위험하다. 조명시설도 미비해 야간에는 사고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종청사 부근 주요도로가 2차선으로 설계된 점도 의아스런 부분이다. 앞으로 진입차량이 더 늘 경우 교통체증이 불가피해 보인다.
통근버스 역시 배차간격이 심하게 길고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라 급하게 움직일 일이 생기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 역시 취재 당시 세종청사에서 시청본관까지 이동할 때 버스를 30여분이나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타야만 했다. 야간에는 할증이 붙으니 더욱 문제다. 대리운전을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이는 곧 생활전반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하물며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나가는 것조차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점심 한끼 해결하기도 벅차
세종청사 안에서도 민원은 끊이질 않는다. 안행부에 따르면 상반기 세종청사 불편신고 접수센터에 들어온 민원은 536건에 달한다. 대부분 교통, 의료, 자녀 교육, 주차 등 생활전반과 관련된 민원들이다. 이 가운데 개선이 완료됐거나 개선을 추진 중인 민원은 전체의 93%인 500건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종청사관리소 공무원들이 주말도 반납한 채 밤낮으로 민원해결에 총력을 쏟고 있다.
건물 내 화장실 추가 설치와 자전거 수리센터 개소, 조기 출근 및 심야 퇴근버스 신설, 개폐형 창문 추가 설치 등이 대표적 개선사항이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도 제공한다. 세종청사 근처에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업무용 차량 2대를 이용해 청사에서 유성 선병원이나 충남대병원까지 응급환자를 이송해준다.
구내식당은 좌석 부족 지적이 잇따르자 1700여석까지 확대했지만 여전히 5000여명이 넘게 근무하는 세종청사 내 인원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란다. 덕분에 근처 건설현장에 자리한 함바집이 공무원들에게 인기다. 또한 대전이나 장군면, 조치원에 위치한 식당으로 차량 이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제 시간에 예약하지 않으면 밥 먹기도 힘들다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다.
문제는 외부에서 먹는 밥값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 등 오피스 일대 식당들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열악한 교통과 업무비효율에 따른 추가 근무, 높은 물가 등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었다.
◆원주민에게 세종시란 '남의 땅'
공무원, 이른바 이주민들이 주로 편의시설 확충에 불편을 겪고 있다면 원주민들은 생계형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삶의 터전을 내줬던 원주민들은 재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모 원주민조합 소속 관계자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걱정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론 도시가 잘 돼서 원주민들이나 근처 지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어 찬성했다"면서 "이제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인근 주택이나 아예 다른 도시로 떠난 원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행복도시는 들어섰지만 그 이익은 하나도 누리지 못한 채 구경만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서울의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과 유사해보였다.
그나마 세종시 주민생계조합 ㈜전월의 경우 원주민들이 살아남는 법을 찾아간 모범적인 케이스다. 행복도시 건설사업으로 생활기반을 상실한 원주민들의 소득창출사업 지원 등 재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조합으로 현재 2837가구가 가입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주로 철거, 수목이식 등 세종시 내 건설사업과 관련한 위탁사업을 맡고 있다. 수당은 일당으로 받으며 기본 10만~12만원에서 경력기술자의 경우 15만원까지도 받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세종시 내 건설사업과 대부분의 기반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추가사업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청약마감률 40%…'분양불패' 꺾이나
'분양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던 세종시 분양시장에도 적색불이 켜졌다. 올해 상반기 세종시 청약 결과 순위 내 마감률이 지난 2년 동안과 비교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세종시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45개 단지 2만9469가구가 공급돼 이 중 37개 단지가 순위 내 마감, 청약마감률 82.2%를 기록했다. 반면 올해는 10개 단지 5212가구가 공급된 가운데 그중 4개 단지만이 순위 내 마감돼 청약마감률 40%를 기록해 분양성적이 반토막 났다.
올 초만 해도 세종시 첫 분양사업장인 '호반베르디움 5차'가 608가구 모집에 1270명이 청약해 평균 2.0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마감돼 세종시의 분양 열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3월과 4월 세종시에서 분양한 6개 사업장이 모두 순위 내 마감하지 못하면서 세종시 분양시장의 열기가 식은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시 첫마을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짧은 기간 동안 수요대비 물량이 너무 많이 쏟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예상보다 공무원 이주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기반시설 확충도 더뎌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올해 말 2차 입주 예정이던 공무원들의 세종시 이주시기가 내년 2월로 미뤄질 조짐을 보임에 따라 세종시 부동산시장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입주예정인 아파트는 3438가구이며 이 중 하반기 물량만 2455가구에 이른다. 이들 중 과반수 이상은 공무원들로 입주 연기가 불가피해질 경우 잔금납부 차질부터 역출근을 해야 하는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2차 입주시기가 연기되면 세종시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개인적 피해부터 행정적 차질까지 여러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문제와는 무관하게 세종시의 땅값과 집값, 전셋값은 무한정 치솟는 중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1억원 초반대에 거래되던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이 지금은 2억원 이상으로 급상승했다. 매매가 역시 올 초와 비교했을 때 6개월 새 3000만~5000만원 가량 상승했으며, 토지공시지가는 1년 새 47.59%나 올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종시의 개발 호재가 여전히 충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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