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글로벌시장, 특히 아시아 신흥시장을 직격했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란 경기침체기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취했던 각종 완화정책을 경제에 부작용을 남기지 않게 하면서 서서히 거둬들이는 전략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올해 안에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고 내년쯤 출구전략에 들어간다"고 발언한 것을 사실상의 '출구전략 로드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당장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공포와 패닉에 빠졌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경제지표 실망에 이어 신용경색 위기까지 불거지면서 아시아시장이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코스피는 지난 6월19일부터 25일까지 5거래일간 6.31% 하락, 1900선대에서 1780선대로 떨어졌고 코스닥지수는 9.98% 급락하며 530선에서 480선대로 추락했다.
예상외로 급락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전문가들은 한번쯤은 거쳐가야 할 일이라고 평가한다. 어차피 파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언젠간 음악이 꺼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무제한적으로 풀렸던 돈(유동성)이 줄어들면 그에 따른 호황을 누렸던 금융시장에 단기적으로 충격이 나타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마냥 출구전략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낼 필요는 없다. 양적완화의 축소에 이은 출구전략이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미국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출구전략=양적완화 종료'는 아니다. 연준의 출구전략은 양적완화가 끝난 뒤, 만기증권의 재투자 종료와 금리인상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현재 투자자들은 양적완화의 종료를 출구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출구전략, 즉 양적완화 종료가 버냉키 의장의 말대로 진행되는 것은 가능할까.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
◆ 버냉키 로드맵, 계획대로 될까
지난 6월19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이틀간의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와 양적완화 규모를 모두 동결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몇차례 FOMC 회의에서 향후 출구전략의 원칙들에 대해 검토해왔다"며 출구전략에 대한 로드맵을 전했다.
버냉키 의장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면 올해 말부터 양적완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면서 "경기회복세가 지속된다면 내년 중반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출구전략 로드맵을 제시하며 단서를 달았다. "경기회복세가 지속된다면"이라는게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출구전략을 시행하기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남았고, 유동성 파티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4분기, 혹은 연말에 시행한다고 해도 최소 4~5개월 이상 남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미국경제가 살아났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없는 상태에서 버냉키 의장이 출구전략 로드맵을 제시한 것은 정치적 배경도 깔려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킴 도 베어링 아시아멀티에셋 대표는 지난 6월26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미국경제를 살린 영웅'이 되겠다는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미국경제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면서 "실제 미국경제 성장전망은 버냉키 의장이 제시한 것만큼 강하지 않으므로 연준의 출구전략은 임박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나중혁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버냉키 의장과 연준은 경기회복이 만족스럽지 않은 현시점에서 다소 공격적이고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타임테이블을 제시했다"며 "이런 선택의 이면에는 내년 1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버냉키 연준 의장의 정치적 변수가 고려됐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사실 버냉키 의장은 그간 미 정치권과 꾸준히 대립각을 세워왔다. 지난 2010년 1월 미 상원(민주 58, 무소속 2, 공화 40)은 연준 의장 재임 인준안을 가결시킬 때 역대 가장 많은 30표의 반대표를 던진 적이 있고, 지난해부터 재정절벽과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해왔다.
또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FOMC 이전인 6월17일 공영방송 P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버냉키 연준 의장은 그가 원한 것보다 의장직에 오래 머물렀다"며 사실상 연준 의장의 교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나 이코노미스트는 "우리가 예상하는 적절한 양적완화 축소 또는 종료 타임테이블을 제시할 시점이 연준 의장의 교체시기와 맞물려 있어 연준 입장에서는 이에 따른 불확실성이 시장에 미칠 더 큰 파장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며 "비슷한 맥락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버냉키 연준 의장의 레임덕 현상과 이에 따라 연준의 시장통제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상황도 동시에 고려된 (출구전략 로드맵) 결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버냉키 의장이 말년을 앞두고 시장통제력 상실을 고려해 미리 선수를 쳤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버냉키의 한수가 과연 시행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여전히 경제지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출구전략 시행과 관련해 '에반스 룰'을 주목하고 있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내놓은 에반스 룰은 출구전략 요건으로 실업률 6.5%, 물가상승률 2.5%를 제시했다.
문제는 현재 미국경제가 실업률 7.5%, 물가상승률 1.7%를 기록해 이 목표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현재 실업률 하강추세를 연장할 경우 에반스 룰에서 제시한 6.5%에 도달하는 시점은 내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버냉키가 던진 출구전략은 신의 한수가 될까, 아니면 시장교란 요인으로만 남게 될까.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 양적완화 축소, 대체 언제 시작될까
버냉키 의장이 경기회복을 전제로 출구전략 가능성과 시기를 구체화한 로드맵을 제시함에 따라 시장은 요동쳤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뉴욕, 유럽증시까지 모두 패닉에 빠지며 '버냉키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양적완화 속도조절은 버냉키 의장이 언급한대로 빠르면 올해 말께 시작된다. 따라서 지금 당장 연준이 유동성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미국의 한 방송사가 월 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 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양적완화(QE) 종료시점은 올해 5%, 내년 전반기 58%, 내년 후반기 2%, 2015년 12%로 집계됐다. 또한 응답자의 대다수는 올 연말 출구전략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해 지난 4월 조사의 2014년 2월보다 시기가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광혁 이트레이드증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생각해볼 수 있는 출구전략 시나리오는 다섯가지가 있는데, 시행시기는 올 9월, 12월, 내년이다.
최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다섯가지 시나리오 중 두가지는 '9월 중 출구전략 시행'이다. 올 9월 중에 국채 매입과 MBS(모기지담보부증권) 매입 규모를 일부 축소하는 것이 첫번째이며, 두번째는 국채 매입을 9월 중에 완전 종료하는 것이다.
최 이코노미스트는 "경기회복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채 매입 중지 등 보다 강한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9월까지 눈에 띄는 경기회복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시장이 예측하는 범위 내에서 국채 매입과 MBS 매입의 규모를 조금씩 축소하며 시장이 적응할 수 있는 시그널을 주는 수준에서 출구전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번째로 제시한 시나리오는 '연말 출구전략 시행'이다. 그는 첫번째 시나리오와 동일한 방법으로 국채 매입과 MBS 매입규모 일부축소를 연말에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시나리오는 '내년 초에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이다. 네번째는 국채 매입 중단을 1~2월에 시행하는 것이며, 다섯번째는 1월보다는 조금 더 늦은 시기에 출구전략을 감행하는 것이다.
최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초에 출구전략을 시행한다면 시장의 기대가 나타나는 시점을 교묘히 빗겨가려는 연준의 정책적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내년에 시행될 정책은 올해 경기회복에 대한 확인, 시퀘스터(연방정부 재정지출 자동 삭감)로 인한 영향을 파악한 이후의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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