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희 기자
 
'최장수 CEO', '야성의 리더십', '신입사원과 소통하기 위해 <무릎팍 도사>를 챙겨보는 사장님'. 코리안리를 아시아 최고의 재보험사로 성장시킨 박종원 부회장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은 지난 6월14일 평생 직업이었던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부실기업이었던 대한재보험(2002년 6월 코리안리로 사명 변경)의 수장을 맡아 15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따라서 박 부회장에게 있어 '코리안리'는 단순한 직장, 그 이상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

이제 경영후선으로 물러난 그는 후배들이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매진할 계획이다. <머니위크>는 지난 6월24일 박 부회장을 만나 코리안리의 성장과 관련된 후일담, 그만의 리더십, 향후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 장장 15년입니다. 코리안리 CEO 자리에서 물러난 소감이 궁금한데요.

▶ 글쎄요, 소감이라기보다는 사장으로 있을 때보다 지인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도 자주 오고 더 바쁘네요.(웃음)

- 박 부회장에게 코리안리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내 생애 일부였습니다. 나의 모든 열정과 애정을 쏟아 부어서 15년을 보냈습니다. 15년간 하루도 지루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혼심의 힘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박종원 일생에서 코리안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기울였던 노력들이 하나둘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매우 기쁘더군요.
 
◆"교장 선생님 같은 우리 사장님"

- 본인이 생각했을 때 직원들에게 '어떤 사장'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까.

▶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EO가 아니라 '교장선생님' 같은 이미지였다고 봅니다. 직원들에게 실적이 아닌 인성교육, 가치관교육을 강조한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경영은 이익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고 이들과 협력해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자적인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직원의 인성까지 교육시킨다는 철학을 가지고 15년간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 처음 코리안리(당시 대한재보험)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심정이 기억납니까.

▶ 기억나죠. 그 당시 밤잠을 못잘 정도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코리안리'라는 아이를 난산 끝에 얻었고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애정을 쏟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애정과 열정이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의 재보험사로 키워냈다고 생각합니다.

- 코리안리를 이끌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언제였나요.

▶지난 1998년일 겁니다. 당시 코리안리는 대우채로 인해 3800억원의 손실이 났고 결손만 2800억원에 달했습니다. 회사는 오갈 데도 없는 난파선 수준이었습니다. 회사 분위기는 마치 배가 침몰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수준이었지요. 때문에 회사를 흔들림 없는 조직으로 만들기에 매진했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 가장 도움을 준 인물은 누구였나요.

▶ 이호성 당시 노조위원장입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했고 경영진과 노조가 합심해 조직 안정화를 이뤄야 했습니다. 구조조정 대상은 약 30%였지요. 조직을 삼각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위에 있는 직급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임원을 비롯해 부장·차장 등은 50%, 그 아래직급은 17~18%가 해당됐습니다. 이를 통해 조직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이 이호성 위원장입니다.

 -당시 심경이 어땠나요.

▶현재의 코리안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CEO 입장에서 인력을 구조조정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지금도 그 당시 직원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합니다.

- 반대로 회사를 이끌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예전엔 국내영업만 했는데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해 해외진출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많은 영업활동을 벌였지만 계약을 성사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고보니 신용평가기관인 S&P의 등급이 없어 회사의 신뢰도가 매우 취약했습니다. S&P등급을 받으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더군요.

-결국 S&P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셨나요.

▶당시 코리안리의 등급은 'BBB-'였습니다. 성장성과 수익성, 경영일관성 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담보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거지요. 고민이 깊던 어느날 친구였던 조프리 브룸니(에이온 대표)가 미국 S&P 본사를 직접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2006년 6월초, 회사 리스크관리팀장과 함께 S&P 본사로 찾아가 코리안리의 신용등급에 대한 주제로 1시간여 동안 격론을 벌였습니다. 그들을 설득한 끝에 그해 12월 'A-'라는 신용등급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심경이 어땠나요.

▶ 낙제생을 우등생으로 만들어 놓은 선생님의 기분이랄까요.(웃음) 세계시장에서 당신 회사는 'A등급'이라고 인정받으니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좋은 동기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금이야 많은 기업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박종원 사장만의 독특한 인재선발 과정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 대표적인 것이 실내면접 이후 진행된 '현장면접'이지요.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통해 선발된 1차 합격자들과 현재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팀을 이뤄 산행을 하고 내려와서 축구 등을 하는 겁니다. 이때 직원들과 오가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인성 및 성향을 파악한 후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 독특한 인재선발과정을 진행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 학업성적만 놓고 봤을 때 초우량 S등급을 선호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인성, 즉 사람 됨됨이를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을 선택했지요. 선배사원들과 대화를 통해 내면의 가치관, 인생철학 등을 알아본 후 그 사람에 대해 판단했습니다.

-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본인을 포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약 30~40분간 진행되는 실내 면접에서는 충분히 포장할 수 있지요. 하지만 대리, 과장 등 선배사원과 하루종일 학교생활, 직장에 대한 생각, 연애관 등을 대화하는 데 어떻게 포장이 가능하겠습니까.

- 독특한 면접방식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 어느날 한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장님, 좋은 동기들을 선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은 평생 자기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자신의 동기들을 보니 속된말로 자기보다 잘났다는 겁니다. 실력도 출중하지만 겸손까지 갖췄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동기·조직문화가 지금의 코리안리를 있게 한 원동력 아니겠습니까.

재보험 창출로 '비전 2020' 달성

- 박종원 사장하면 '야성 리더십'이 떠오릅니다. 직원들의 야성을 살려주기 위해 백두대간 횡단도 하고, 히말라야 등반도 떠나셨는데요.

▶ 조직을 어느 정도 안정시키고 나니 그 다음에는 직원들의 멘탈(정신력)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공기업 성격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현실안주', '매사안일' 등 생각 자체가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추진하게 된 겁니다.

- '야성'을 끌어올려 어떤 효과를 봤나요.

▶ 직원들 사이에 '남은 못해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못하면 우리도 못한다', '환경 때문이다'라는 생각에서 '남이 못해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주변 탓하지 말자'라는 조직문화로 변화됐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는 부회장 겸 상임고문으로서 코리안리의 앞날에 대해 조언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요. 코리안리의 최우선 목표은 무엇입니까.

▶ 원종규 신임 사장도 밝혔듯 기본적인 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해외매출 비중을 50%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를 달성해 세계순위를 10위에서 5위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비전 2020'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 핵심은 재보험을 창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보험사가 왜 상품을 만드느냐고 말하는데, 재보험사가 상품을 만들어 원보험사에게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새로운 위험을 인수해야 새로운 먹거리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완성되면 자연스럽게 목표도 달성될 것입니다.

<프로필>
1944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71년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4년 국세심판소 조사관/ 1989년 재무부 결산관리과장/ 1994년 총무과장/ 1997년 통계청 통계조사국장/ 1997년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1997년 재정경제원 공보관/ 1998년 재정경제부 공보관/ 1998년 대한재보험 사장/ 2002년 코리안리 대표이사 사장/ 2013년 코리안리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