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필의 대표인 나는 개발사업을 시작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총 4회의 정부지원 기술개발사업(정부지원사업) 도전 경험이 있으며, 서면평가는 모두 통과하였으나 대면평가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역대 가장 성공적인 평가결과를 얻은 지금도 정부지원사업의 평가체계를 신뢰할 수 없다.
정부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업체가 공개적으로 평가체계를 탓하는 일은 자칫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일 수 있다. 때마침 다이나필은 절차상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단계를 거쳤고,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된 최대한의 기술과 정보를 공개해왔으므로, 이번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평가 수검 경험도 공개하기로 한다.
<b>우리 국민들의 자전거는 2~30대 젊은이들에게만 적합
문제해결을 위한 신기술을 개발하여 라이선스하겠다는 계획 수립</b>
도심형 개인이동수단 개발업체들이 틸팅 기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륜차의 주행 안정성 문제 때문이다. 이륜차 중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면서 인간의 이동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유용한 이동수단인 이륜자전거는 사용자에게 '균형을 유지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연습을 통해 자전거 타는 방법을 충분히 익힌 자는 걷는 듯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잡고 주행하지만 그동안에도 신체의 균형유지 노력은 계속 된다.
그런데 청년기를 지나 나이를 더 먹을수록 인체의 운동능력은 저하되고 균형감각도 무뎌짐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서 나이 많은 이들에게 이륜자전거 주행은 점점 버거운 일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의 여파는 교통사고 통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b>'너는 떠들어라, 나는 이미 평가를 끝냈다'는 식의 평가위원들 자세</b>
7월 첫째 주에 서면평가 통과 소식을 듣고 넷째 주에 대면평가를 받게 되었다. 대면평가 시작 일주일 전에 공지 메일을 받았는데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발표(20분) 및 질의응답(20분)이 진행되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별도로 작성해올 필요는 없고 보충설명을 위한 자료는 준비 가능"하되 "어떠한 자료를 추가로 가져온다 해도 사업계획서 내용을 기반으로 평가가 진행된다"라는 내용이었다.
대면평가 현장에서 평가위원은 여섯 명이었다. 나는 사업계획서 페이지 번호를 불러주면서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발표했으나 그들 중 해당 페이지를 넘겨보는 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보충설명자료 발표에서는 그나마 보는 척이라도 하는 이가 두세 명. 이런 답답한 와중에 출입구 쪽 귀퉁이에 앉은 간사(진행요원)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화면을 보며 연실 히죽거리고 있어 발표자로서 비웃음 받는 느낌에 한껏 위축되었다.
발표는 대략 10여분 남짓으로 속히 마무리를 지은 듯하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한 평가위원의 첫 의견은 "사업계획서 제목이 내용하고 안 맞네"였고, 그걸 또 기다린 듯한 평가위원장의 맞장구는 "시스템에 등록되면 제목으로 검색될 텐데 제목을 정확히 썼어야 했다"였다. 사업계획서 제목에 대한 이들의 추궁은 이상하리만치 집요하여 발표자를 당황케 했다. 기타 제목 이외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평가위원의 지적이 있을 때마다 해명을 할라치면 돌아오는 답은 "그 내용을 사업계획서에 넣었어야···"였다. 분위기상 평가위원들은 이미 사업계획서만으로 평가를 다 끝낸 눈치였다.
시종일관 답답한 마음으로 대면평가 수검을 마치고는 사실상 '떨어졌구나'하고 기대를 접었다. 그리고 지금껏 뇌리에 남아 절대 풀리지 않는 의문 한 가지는 '그들은 왜 기술성과 사업성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들을 하지 않았을까'이다. 이 기술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이유로 개발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는지, 어떻게 특허기술을 라이선스할 것인지 아무도 묻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사업계획서 작성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뿐.
<b>사업계획서만 보고 평가하면 '지침' 위반</b>
정부지원사업이 사기업의 공모행사와 유사한 점은 참가자 대다수가 평가과정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탈락자들의 막대한 노력의 합이 최종적으로 선정자들에게 돌아가는 과실(혜택)보다 클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대면평가에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요구하지 않은 결정은 그래서 환영받을만하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은 이런 평가방식의 변화를 '자신들이 일하기 편하게' 받아들였고 '오로지 사업계획서만 보고 평가하겠다'는 자세로 평가에 임했다. 이는 중소기업청의 <1인 창조기업 과제 운영관리지침 4조 나항> 위반이다. 운영관리지침은 대면평가에 있어 "평가위원회는 제출된 사업계획서 내용, 과제책임자의 발표내용, 단독 또는 협력연구의 효과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면평가표에 따라 평가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어쨌거나 대면평가 후 마음을 비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8월 첫째 주에 받은 대면평가 결과 통지내용은 놀랍게도 '추천대상(통과)'이었다.
<b>수검자는 포기했지만 평가위원들의 결정은 '통과'였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뭘 어떻게 평가했을까
평가의견 받아보니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만 반복하고 있어</b>
예상 밖의 결과에 '평가위원들이 도대체 무얼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증이 커졌다.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진행에 있어 단계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업무를 총괄하는 전문기관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기정원)이다. 담당자를 찾아 아래 '대면평가 종합의견'을 받아볼 수 있었다. 작성된 내용은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인 게 뭔지 안다'는 전문가들이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판단'을 기록으로 남겼다.
① 핵심기술은 보충자료를 동원하여 충분히 설명했고(한 평가위원이 "이걸 처음부터 사업계획서에 넣었어야지"라고 말했다), 메커니즘은 작동여부를 확인한 뒤 꼭 필요할 때만 보완하겠다.
② 메커니즘을 증명하기 위해 제작할 두 가지 개인이동수단은 동일하게 역삼륜이고 세미리컴번트형 탑승자세를 제공한다. 이런 공통점을 갖는 여러 개인이동수단에 적용 가능한 메커니즘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놓고 '각각에 적용할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적은 적합하지 않다.
③ 사업계획서에 명시한 개발 결과물의 성능평가 방법과 지표의 선정은 충분히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다. 그것으로 틸팅 메커니즘의 작동여부와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해보일 수 있다. 그것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려면 평가위원은 그 이유를 공학지식에 근거하여 제시했어야 한다.
④⑤ 사업계획서에 따라 제작할 두 가지 개인이동수단은 양산을 위한 시제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틸팅 메커니즘을 검증하고 이 신기술을 적용하여 종전과 다른 어떤 제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성능시험품이다. 사업계획서 상의 기술개발 절차에는 디자인 단계에서의 구조해석과 시제작 단계에서 내구성·안전성 시험을 명시하였으나, 그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기술개발의 최종목표가 아닌 이상 '교통수단' 양산품으로서의 내구성과 안전성 평가지표를 '반드시' 포함시키라는 지적은 핵심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⑥⑦⑧ 대면평가에서 사업성과 관련한 질문이나 지적은 전혀 없었다. 돌아보자면 평가위원들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업계획은 마케팅 서적을 복사해서 붙여 넣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본 기술개발에 있어 '사업화 성공'은 특허기술의 라이선스를 의미하며 그 방안에 대해서는 사업계획서에 충분히 기술하였다. 그것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려면 평가위원은 그 이유를 마케팅지식에 근거하여 제시했어야 한다.
평가위원들은 보수를 받는다. 국가가 국민에게서 세금을 걷어 그들에게 보수를 지급함으로써 정부지원사업의 참가업체 평가가 이뤄지는 것. 만약 참가업체가 자비로 평가비용을 지불하고서 위와 같이 매 항목마다 '구체화하라' '보완하라' '연구해보라'라는 평가서를 받게 된다면, 불만 가득한 민원이 빗발칠 것이다.
<b>구체적인 평가가 어려울 땐 결정적인 평가가 대안이다</b>
신기술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데는 전문성을 갖추더라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평가위원들에게 '평가의견이 왜 이렇게 부실한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분명 '시간적 제약'을 이유로 들 것이다. 나 역시 간혹 타인의 아이디어를 검토할 기회가 있는데, 되도록 신속하게 의견을 완성하기 위한 나만의 선택은 '반박할 수 없는 결정적 흠결'을 찾아 그것 하나만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b>기술개발사업 평가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b>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의 전체적인 평가체계를 보자면, 사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은 평가에 관련한 모든 사항을 기정원에 위임하고 기정원은 또 외부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려 단계별 평가를 위임한다. 만약 평가가 잘못됐다면, 중소기업청은 기정원으로 책임을 넘기고 기정원은 '관리지침에 따라 평가위원회를 꾸려 진행된 일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식의 책임회피가 가능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평가위원들은 책임을 질 만한 상황에서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평가의견만 기록으로 남긴다. 그런 '모호'한 판단에 따라 업체별 점수를 매기고 통과여부를 결정한다. 그들은 '익명의 외부인원'이라서 어떤 잘못된 평가를 내리더라도 참가업체는 그들을 찾아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익명의 전문가가 정부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흐릿한 판단'으로 참가업체의 기술개발 사업계획을 평가하고 있는데, 관리자 측에선 아무도 그 결과에 책임질 필요가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정된 기술개발 과제의 최종 결과물이 '실패'인 경우 참가업체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지원사업 추진체계 내에서 가장 낮은 하부조직으로서 실질적인 사업의 실행(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각 사업체에만 책임이 주어지는 셈이다. 기정원이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발탁한 전문 평가위원들이 정부지원금 지원 대상 업체를 발굴하여 역시 기정원이 지원금의 지급을 최종 결정했는데 어째서 책임은 지원을 받은 업체만 져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모호한 판단'은 죄악시되어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 근거를 '명확한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시스템 상의 상층부에 위치할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옳을 것이다. 특히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자는 신분 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책임감을 온전히 갖도록 해야 한다.
<b>'짜고 치는 고스톱과 그들의 익숙한 일처리'···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발전은 없다</b>
기정원의 기술평가팀 직원은 "대면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업체에 한해 '대면평가 종합의견'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탈락을 통보받은 업체들 중에서 이의신청을 한 업체에게만 평가의견을 제공했다는 얘기다. 만약 탈락한 모든 업체에 해당 자료를 제공했다면 저마다 평가의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의신청을 할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아쉽다.
이 직원은 또 탈락한 업체들 모두에게 평가의견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 업체들의 경영상 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추측컨대 이메일 주소 기입에 착오가 발생하는 경우 평가의견이 엉뚱한 업체에 전달될 가능성을 얘기한 듯하다. 어쨌든 탈락한 업체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에 참가를 신청했던 업체들 중 되도록 많은 대표들이 평가의견(대면평가 종합의견)을 기정원에 요청해서 받아보았으면 한다. 익명의 전문가들이 각 업체의 기술개발 및 사업화 계획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했는지 그들의 임무수행 결과를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정부지원사업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소리를 8년째 들어왔다.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지 않고 불합리한 체계를 확인하고도 눈감아주는 한 그들의 '익숙한 일처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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